'이면합의' 입 다물었지만 쌀 40만t 사실상 약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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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장관급회담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 통일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대북 쌀.비료 지원을 이면합의해 준 게 아니냐는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쌀 40만t과 비료 30만t의 지원을 합의했는지, 안 했는지는 속시원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흐름과 이재정 통일부 장관의 발언을 종합하면 '사실상 합의'가 이뤄진 것 같다.

◆'합의' 발언 일파만파=이 장관은 2일 밤 귀환 기자회견에서 대북 쌀.비료 지원을 기정사실화하면서 '합의'란 표현을 썼다가 번복했다. 합의 사항은 평양에서 발표한 공동 보도문에 담겨 있다. 공동 보도문에 없는 또 다른 내용이 '합의됐다'고 했으니 '이면 합의' 논란이 일어난 것이다.

정부는 북한이 이번 20차 회담에서 쌀.비료 지원을 요구해 올 것으로 예상했다. 그래서 선(先) 비료 지원→후(後) 쌀 차관 제공이란 전략을 마련해 평양에 갔다. 북한은 지난달 28일 첫 전체회의 직후부터 다급하게 나왔다. 권호웅 북측 단장은 "지난해 미사일 발사로 유보된 50만t 쌀 지원은 포기하겠다"며 "올해 분 쌀을 달라"고 이 장관에게 요청했다.

남측 대표단은 비료의 경우 북한이 판문점을 통해 '적십자 채널'로 연락해 오면 조속히 보내 주기로 북에 약속해 줬다. 그렇지만 쌀은 차관급 별도 회의체인 '경제협력추진위원회'를 열어 차관제공 계약 등 절차를 밟기로 했다.

그러자 북한은 경협추진위를 3월 중에 열자고 서둘렀다. 남측은 날짜를 4월 18일로 늦춰 잡아 이를 관철시켰다.

4월 18일로 늦춰 잡은 데는 북한이 6자회담 2.13 핵 합의에 따른 초기 이행조치를 실천하는지를 지켜보겠다는 복안이 깔려 있다. 2.13 초기 이행조치는 60일로, 4월 13일이 마감 시한이다.

따라서 4월 13일까지 북한 당국이 핵 시설을 폐기하면 닷새 뒤인 18일의 경협추진위에서 쌀 지원을 결정하게 될 것이란 얘기다.

지원 물량과 관련, 이 장관은 "쌀 40만t, 비료 30만t에 양측이 합의했다"고 했다가 "(합의한 게 아니라)북한이 요구한 물량"이라고 번복했다. 그러나 초기 발언이 워낙 구체적이고 분명해 번복 발언은 미덥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결국 쌀이든 비료든 사실상 지원 약속을 다 하고, 쌀에 대해선 조건을 단 모양새를 갖춘 것 같다는 해석이 많다.

◆돈 얼마나 드나=30만t의 비료는 이달 중 첫 배가 뜰 것으로 보인다. 수송비를 포함해 1080억원이 든다. 쌀은 일러야 다음달 말에 갈 수 있다. 경협추진위에서 차관제공 계약(연리 1%에 10년 거치 20년 상환)이 체결돼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쌀 40만t 지원에 들 협력기금 1565억원을 확보해 놓았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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