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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 담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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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993년 8월 발표된 '고노 담화'는 종군 위안부의 존재를 시인하고 사죄를 표명한 일본 정부의 공식 문서다. 당시 관방장관인 고노 요헤이(河野洋平.현 중의원 의장)의 명의로 발표된 담화는 1년8개월간의 조사 끝에 결론을 내렸다. "위안소의 설치는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한 것이며, (중략) 모집은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행했지만 감언.강압에 의한 사례가 많았고, 나아가 관헌이 직접 가담한 일도 있었다."

고노 담화가 나오게 된 것은 위안부 강제 모집 사실을 폭로한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의 증언이 기폭제가 됐다. 요시다는 "태평양전쟁 때 '국민 총동원령'을 집행하는 노무보국회의 야마구치현 동원부장으로 있으면서 조선인 6000명을 강제 연행했고 그 가운데 위안부 여성도 많았다"고 밝혔다. 그의 증언은 91년 아사히 신문에 집중 보도되면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고 한국에서는 위안부 출신 할머니의 공개 증언이 잇따라 나왔다.

하지만 요시다는 이후 많은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저명 역사학자인 하타 이쿠히코(秦郁彦)는 제주도 현지 조사를 거쳐 "요시다의 말을 뒷받침하는 아무런 증거나 증언이 나오지 않았다"며 요시다를 '직업적 작화사(作話師)'로 공격했다. 궁지에 몰린 요시다는 "일부 사례의 시간.장소에는 창작이 가미됐다"고 털어놨다.

이를 계기로 고노 담화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일본에서 상당히 퍼지게 됐다. 정계에서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대표적이다. 그는 총리 취임 전인 2005년 4월의 한 강연회에서 "위안부는 요시다가 꾸며낸 이야기이며 아사히 신문이 이를 보도해 독주했다. 일본 언론이 만들어 낸 이야기가 외국으로 번져나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요시다가 강제 동원 사실 자체를 부인한 것은 아니다. 그는 자비를 들여 한국 천안에 '사죄의 비'를 세우기도 했다.

고노 담화 폐기 또는 수정론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논리가 있다.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입증해 주는 정부 공식 문서가 한 건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안의 성격상 강제 동원 사례를 공문서에 기록할 수 있었을 지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의문의 여지가 있다. 그에 앞서 살아 있는 피해자들의 증언에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좀처럼 납득하기 어렵다. 강제 연행을 증언하는 위안부 여성은 한국.필리핀.대만.중국 등 아시아는 물론이고 네덜란드까지 수백 명에 이르는 데도 말이다.

예영준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