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축추세 맞춰가야 할 남북회담(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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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2일부터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한 고위급회담은 다른 어느때보다 많은 기대를 갖게 한다. 회담이 중단됐던 지난 10여개월동안 한반도 안정과 관련해 직접·간접적으로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세의 변화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들의 대부분이 국제적인 협력과 평화정착을 굳혀주는 것이라는데 남북한 관계에서도 고무적이 아닐 수 없다. 소련의 정변과 미소의 전술핵 감축선언에서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우리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이러한 변화중 특히 미소의 핵감축선언과 남북한 유엔가입은 우리에게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미소의 핵감축선언에 따라 그동안 한반도문제 해결에 논란이 되어왔던 핵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토대가 마련되었으며 유엔 동시가입을 통해 남북한 관계정립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 것이다.
그동안 남북한 관계에서 가장 큰 쟁점은 군사적 긴장해소 방안과 통일에 이르기까지의 양자 관계를 어떻게 발전시키는가에 있었다. 이에 대한 이견때문에 세차례의 고위급회담은 진전을 보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이견들을 해소할 좋은 기회가 마련되었다. 미국의 전술핵 폐기방침은 한반도에도 적용됨으로써 북한이 주장했던 한반도의 비핵화로 가는 길에 들어서게 됐다.
북한으로서는 이러한 변화를 활용해 그동안 자신을 고립시켰던 핵개발문제에 대한 의혹을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된 것이다. 더 이상 핵사찰 문제를 흥정거리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하루라도 빨리 핵사찰에 응한다는 것은 북한이 그토록 희망해온 미국과의 접촉,일본과의 수교 등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조치는 물론 남북한 관계에서도 중요하다.
그만큼 북한에 대한 신뢰가 조성돼 남북회담에서 북한의 주장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될 수도 있고,그 제안을 수용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세차례의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진전이 없었던 근본적 원인은 서로가 신뢰의 바탕이 없었던데 있었다.
불가침선언,군비통제,남북한교류문제 등에 관해 양측이 제의한 내용들은 거의 모두가 일치하고 있다. 다만 그 선후관계에서 의견이 다를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이상 남북한이 지금과 같은 냉전시대의 상황속에서 계속 대립할 시기가 아니다. 국제정세는 이미 대폭적인 군비축소의 추세로 돌아가는 유리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 맞춰 우리도 군사적 긴장상태를 해소하고 남북한의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민족공영의 끈을 빨리 찾아야 할 때다.
당장 한반도 주변상황을 보더라도 일본의 국제적 위상이 강화되고 대국화 등의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주변정세에 남북한이 계속 이끌려 가서는 안된다.
이번 고위급회담은 남북한이 새로운 정세에 맞추어 합의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어느 한쪽 체제의 논리를 강요하는 편협한 태도에서 벗어나 민족의 장래를 내다보는 회담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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