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선녀의 관점에서 보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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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여성학 이야기

민가영 지음
신동민 그림
책세상, 188쪽
1만3000원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을 '여성'의 눈으로 읽어보자. 나무꾼의 행동은 명백한 절도행위이고, 선녀가 옷을 찾아 하늘나라로 돌아간 것은 일방적으로 빼앗긴 자신의 권리를 되찾은 것이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는 어떤가. 잠든 미녀를 깨우기 위해 키스하는 왕자. 상대방이 원치 않는 일방적인 스킨십은 성희롱이다.

이화여대에서 여성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저자는 "여성학은 이렇게 여성의 시각에서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관점을 바꾸니 그냥 넘길 일이 없다. '여성공인중개사 비율이 40%를 넘어섰다'며 '거센 여풍'이라고 표현한 뉴스나, 아이들 먹거리 광고에 등장하는 '엄마의 자존심''엄마의 사랑'등의 문구만 해도 그렇다. 남성이 공인중개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왜 '남풍'이 아니라 '여풍'인가. 또 '엄마'를 강조한 광고 문구는'아이 건강은 어머니 책임'이란 기본전제를 깔고 있는 게 아닐까.

법도 중립적이지 않다. 국민연금법에서 가입자가 부인일 때 그 남편은 배우자가 사망하더라도 60세 이상이거나 장애등급 2급 이상이라야 유족 연금을 받을 수 있다. 반면 가입자가 남편일 경우 배우자는 아무 조건 없이 유족연금을 받는다. 남편이 생계 부양자라는 성차별적 고정관념 때문이다.

얼핏 '꼭 그렇게 피곤하게 따져야 되냐'는 반발을 살 법도 하다. 실제로 여성학에는 '남성과 여성을 대립시키는 학문'이란 편견이 덧씌워져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해 저자는 분명히 말한다. 되살린 여성의 시각이 모든 인간의 권리.자유.의무.복지.윤리.정의를 위한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 줄 거라고. 비록 처음엔 '고통스러운 작업'이 되겠지만 말이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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