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가족 소설 - 즐거운 나의 집 [1부] 여름 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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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나로 말하자면 오직 그 집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빠와 새엄마가 있는 이 집을 벗어나면 새가 울고 꽃이 피는 어떤 집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아마 아빠의 결혼식장에서부터 그랬을지 모른다. 이건 나중에 생각한 건데 내가 연주한 곡의 제목은 공교롭게도 '나의 집'이었다. '우리 집'이 아니라.

"몰라. 엄마에 대해서라면 아빠는 아무것도 말해준 적이 없잖아."

나는 언제나 아빠한테만은 잔인해진다. 나는 언제나 아빠에게 모든 책임을 돌렸다. 아빠는 내 모든 것을 받아주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내 존재가 아빠에게 얼마나 큰 아픔인지 알고 있었다. 아빠의 마음속에 있는 나라는 존재를, 그게 누구라도 건드리기만 하면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에도 비명을 지를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엄마와 연결하면 아빠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는 것도 나는 막연히 짐작하고 있었다. 아빠는 내가 아빠를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싸움은 늘 아빠의 처절한 패배로 끝나곤 했었다.

[그림=김태헌]

하지만 내가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널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지?"하고 묻는다면 거울은 언제나처럼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응, 그건 우리 아빠지"하고 대답할 것이다. 아빠는 분명 그 순간에도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나도 그것은 안다. 엄마도 아빠의 곁을 떠나는 순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와 내가 다른 것도 있다. "거울아 거울아 지금 이 순간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지?"하고 묻는다면 거울은 "응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것은 우리 아빠야"하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엄마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자 문득 아빠를 떠나 엄마에게로 간다는 것이 겁이 났다. 엄마에게는 이미 두 아들이 있다. 성이 모두 다른 동생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닮지 않았다. 왜냐면 다들 아빠를 닮았기 때문이었다.

"내 배 아파 낳았는데, 열 달 동안 맥주 한잔 못 먹고 담배 피우고 싶은 거 꾹 참고 낳았는데, 게다가 너희 낳고 나서 20킬로도 더 넘게 불은 살덩이들 빼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성도 엄마 게 아니고 얼굴도 엄마 게 없으니……."

엄마는 우리 셋을 앉혀놓고 그렇게 말하며 하하하 웃곤 했었다. 하지만 그 말 뒤에 이런 말들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너희를 다시 얻기 위해서라면 다시 그 시절로도 돌아갈 수 있어. 정말 돌아가기 싫지만 그래도 갈 거야. 엄마가 세상에 태어나 제일 잘한 건 너희를 낳은 거니까."

그럴 때 엄마의 얼굴은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는 초등학교 1학년생처럼 비장한 데가 있었다. 나는 엄마의 말을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끔 엄마가 나와 내 동생들을 낳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을까, 생각하곤 했다. 왜냐면 내가 가끔 엄마 집으로 가서 잘 때 밤늦도록 어두운 거실에 혼자 앉아 있는 엄마를 보곤 했기 때문이었다. 화장실에 가려던 내가, 엄마? 하고 부르면 엄마는 깊은 생각에서 깨어난 듯, 응, 하고 대답했는데 그때 엄마의 얼굴은 어둠 속에서도 많이 늙어보였다. "뭐해?" 내가 물으면 엄마는 "응 잠이 안 와서"하고 대답하곤 했었다. 그리고 가끔은 이런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엄마 글 잘 쓰게 기도해줘……. 막내까지 대학 보낼 수 있을지…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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