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이 청년들이 있기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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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1일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는 내기 골프를 했다가 국민적 비난을 받았다.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3.1절'에 내기 골프를 하는 바람에 온 나라가 발칵 뒤집어진 것이다. 우리 사회의 빈약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엘리트층의 도덕적 의무)' 정신을 성토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그는 결국 총리직을 내놓았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일 오전. 대한민국 군인 569명이 이라크 아르빌로 떠났다. 자이툰 부대의 여섯 번째 교대 병력이다. 이들 중엔 외교관.장성 아들 등 사회 지도층 자제가 다수 포함됐다. 군 면제를 받을 수 있는 해외 영주권자들도 줄지어 자원했다. 해외 유학파들도 적지 않았다.

남부럽잖은 사회적 배경을 뒤로하고 이들은 왜 위태로운 전쟁터로 달려간 걸까. 더구나 지금은 윤장호 병장의 사망 소식으로 들끓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파병 환송식이 열린 지난달 28일 경기도 광주 특전교육단에서 만난 '청년 엘리트'들의 표정은 화사했다. 윤 병장의 사망 소식에도 이들은 한목소리로 "목숨 내놓을 각오가 없으면 자원도 안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영주권자인 한 장병은 서툰 한국말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제대로 된 봉사와 희생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현역 장성인 허일회 준장의 아들인 허명현 일병은 '두렵지 않으냐'는 물음엔 "내 나라를 위해 나부터 실천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답했다.

외교통상부 조병제 북미국장의 아들인 조성우(미국 UCLA 대학 휴학생) 일병은 "국가적 위기 때마다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는 미국 친구들에게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배웠다"며 지원 동기를 밝혔다.

우리 사회의 '어른'들은 종종 젊은 세대들의 '빈곤한 애국심'을 우려한다. 하지만 전쟁터로 기꺼이 달려가는 청년 엘리트들을 보면서 이 같은 우려는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88번째 맞이하는 3.1절에 이라크로 떠나는 젊은 엘리트들은 지금 때묻지 않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실천하는 중이다.

이라크 파병 환송식이 열리던 날 군복 차림의 젊은이들 앞에 이런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대한 건아들이여! 당신이 대한민국입니다'.

정강현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