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장호 병장을 가슴에 묻고 … 그래도 자이툰 장병들 떠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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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툰 부대를 자원한 조성우 일병(右)과 허명현 일병이 환송식에서 주먹을 불끈 쥔 채 구호를 외치고 있다. [광주=최승식 기자]

"자이툰 부대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크다.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돌아와라."

외교통상부 조병제 북미국장은 아들 조성우(22) 일병의 손을 잡고 사흘 전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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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일병은 미국 UCLA에서 국제경제학(2학년)을 공부하던 중 입대했다. 그는 자이툰 부대의 여섯 번째 파병 병력으로 자원 입대해 1일 오전 이라크 아르빌로 떠난다.

출국을 하루 앞둔 28일. 경기도 광주 특전교육단에선 자이툰 부대 교대병력 569명의 파병 환송식이 열렸다. 행사장은 온통 태극기 물결이었다. 1000여 명의 가족들이 곳곳에서 눈물을 훔쳤다. 박흥렬 육군참모총장은 가족들을 향해 "파병 장병들이 안전을 보장을 받으면서 업무를 수행하도록 지원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부대 관계자는"어제 윤장호 병장 사망 소식 때문인지 여느 파병 때보다 가족들이 많이 나온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조 일병을 환송해 줄 가족은 없었다. 아버지인 조병제 국장은 '공무'로 참석을 못했고, 어머니는 2년 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조 일병은 "이런 날 어머니가 곁에 계셨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조 일병은 2003년 이라크 전쟁 발발 이후 줄곧 이라크 문제에 관심을 가져 왔다. 그는 미국 생활 중 부시 정부의 전쟁 정책을 놓고 가까운 친구들과 주기적으로 토론해 왔다고 했다. 조 일병은 "자이툰 부대 파병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자원 입대를 꿈꿔 왔다"고 말했다. 특히 "'노블레스 오블리주(도덕적 의무)'를 실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이라크전 찬반 활동을 펼치는 미국 친구들의 영향이 컸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에 봉사하는 마음과 이라크 현장을 직접 겪어보고 싶은 생각에서 자원했다"고 말했다. 전날 윤 병장의 사망 소식에 대해선 "처음 소식을 듣고 많이 두려웠지만 목숨을 걸 각오가 없으면 전쟁터에 자원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28일 경기도 광주시 특전교육단에서 열린 자이툰 파병 병력 환송식에서 가족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광주=최승식 기자]

◆"내 나라 위해 나부터 실천"=이날 파병에는 조 일병 외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실천하려는 젊은이들이 줄 지어 자원했다. 현역 허일외 준장의 아들인 허명현(21) 일병은 "'전쟁터 경험을 해봐야 진짜 군인'이라는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자원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체육대학에서 사회체육을 전공하고 있는 체육학도다. 어릴 적 '충성'이란 구호를 달고 살았을 정도로 군대 문화에 친숙했다. 그는 "어제 윤 병장의 사망 소식을 진지하게 곱씹어보면서 목숨 내놓을 각오를 다시 한번 다졌다"고 힘주어 말했다. "군인이라면 나부터 봉사할 생각을 하는 게 당연한 일"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해외 영주권자들도 앞 다투어 자원했다. 채희승(22) 상병은 10살 때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났다가 입대를 위해 지난해 처음 한국에 들어왔다. 그는 "한국을 오랫동안 떠나 있어 나라에 대한 부채 의식이 있었다"며 "한국말이 좀 서툴지만 당당한 한국군으로서 국위 선양을 하고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다. 베트남 참전 용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참전 대열에 뛰어든 김모(33) 중사는 어머니에게 미국에 연수다녀오겠다는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이라크로 떠났다. 김 중사는 "나라를 위한 일이라면 나부터 실천해야 한다는 평소 소신을 실천하게 돼 기쁘다. 하지만 어머니가 신문을 볼지도 모르니 실명을 밝히지 말아달라"며 웃었다.

◆자이툰 부대와 동의.다산 부대=자이툰은 이라크전이 끝난 뒤인 2004년 이라크 북부 아르빌에 파병된 부대다. 현재 2200여 명이 주둔해 있다. 동의.다산 부대는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기지에 주둔 중인 205명의 의료.공병 부대다. 테러로 희생된 고 윤장호 병장의 근무지가 다산 부대다.

광주(경기)=정강현 기자<foneo@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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