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딛고 우뚝 선 「제2의 임춘애」|3천·천5백m「금」 정영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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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스타 부재 한국육상이「제2의 임춘애(은퇴)」의 출현으로 기대에 부풀어 있다.
지난 9일 여고 3천m 제패에 이어 11일 여고 1천5백m에서도 4분24초10으로 우승해 2관왕을 차지, 한국중거리계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정영임(18·경기 광주종고3)은 찢어지는 듯한 어려운 가정형편을 딛고 육상중거리 유망주로 발돋움, 임춘애의 출현 때와 너무나 흡사해 화제가 되고 있다.
단지 잘 달린다는 이유만으로 초등학교(하남동부초교) 5년 때이던 지난 84년 트랙에 발을 디딘 정은 숙명적인 가난과 이로 인한 영양결핍으로 도중에 운동을 그만둔 적도 수 차례.
그때마다 힘이 되어준 사람이 광주군 중·고 육상순회코치인 박창규(32)씨.
『박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지금쯤 공장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정의 말대로 박코치는 광주동부여중 1년생이던 정을 지난 86년에 만난 이래 운동장에서는 스승으로, 운동장 밖에서는 후견자로 키워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중거리 스타로의 장도에 오른 정은 3년 때인 88년 싱가포르아시아주니어대회 1천5백m에서 1위, 그해 11월 일본 아시아 중·고 학생대회에서 8백m, 1천5백m 우승 등으로 자질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광주종고에 진학한 정은 칼슘 부족으로 몇 차례 트랙에서 쓰러진 후 운동을 포기할 까도 했으나 그때마다 박코치와 유병국 교사의 도움으로 좌절을 극복했다.
2백만원의 단칸 사글세방에 2남2녀(정은 막내)가 함께 사는 가정 형편으론 보약은 엄두도 못 낼 일.
정의 자질을 꽃피우는데 걸림돌이 「가난」이라고 판단한 박코치·유교사는 지난88년 3백만원을 보태 방 2칸짜리 전세방으로 정양가족을 이사시키는 한편 광주군청에서는 정의 아버지 정명균(51) 씨를 군의 환경미화원으로 채용, 생업을 돕도록 배려했다.
1m63cm·47kg의 다소 왜소한 듯한 정의 강점은 가난으로 다져진 인내심과 승부근성. 여기에 남자선수와 같은 양의 훈련을 소화시키는 엄청난 폐활량과 지구력.
경기도 육상연맹의 김원협 전무는 『선천적으로 스피드가 뛰어난데다 훈련자세도 지극히 성실, 임을 능가하고 아시아 최고의 중거리 여왕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칭찬했다.【전주=체전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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