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원』서울 신문로 한식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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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오랜만에 만나는 옛 친구나 좀 성의 있게 접대해야 할 손님을 선뜻 안내할만한 단골음식점이 있다는 것은 몹시 다행스런 일일 것이다. 이 집을 즐겨 찾는 저명인사들이 워낙 많아 선뜻 「내 단골집」이라고 내 세우기가 좀 겸연쩍기는 하지만 과거 「장원」이라는 유명 한정식 집을 경영하던 주정순씨(71·여)가 꾸려가고 있는 서 울 신문노2가1의 l 「향원」(734-3283)이 내가 자주 찾는 곳이다.
그러나 음식 맛이 좋고 (한정식 1인당 2만5천원, 좀 비싼 것이 흠이긴 하다) 내부 곳곳에 고서화·고가구가 자리 잡고 있어 특별한 정취를 자아내는 데다 산전수전 다 겪은 여주인이 언제나 미소로 맞아 줘 갈수록 새롭게 정이 붙는 곳이다.
식사로는 밥과 국, 그리고 10여가지 반찬이 나오는데 동치미·반김치 등 김치류와 오징어 볶음이 일품이며 식사 후 누룽지가 또한 별미.
동치미는 무·배추를 썰어 넣고 옥파를 갈아 즙을 넣어 단맛을 낸 것인데 담은 뒤 여름엔 2∼3일, 봄·가을엔 1주일, 겨울엔 한달 가까이 묵혀 제 맛을 낸다. 반김치는 여주인이 개발했다는 것으로 별로 짜지도 맵지도 않은 김치를 말한다. 일산산 열무배추를 조그맣고 보드라운 것으로 골라 보리 삶은 물 받친 것에 갖은 양념으로 맛을 낸다.
오징어볶음은 냉동되지 않은 갓 잡아 올린 물 좋은 오징어를 잘게 썬 뒤 깨소금·참기름·고춧가루·마늘 등 양념을 섞어 약한 불로 10분 정도 데친 것인데 속까지 잘 익어 이가 나쁜 사람도 먹기 좋다.
식사를 마친 뒤 구수한 누룽지에 이어 수정과로 입가심하고 나면 마치 고향집에서 명절 상을 물린 뒤와 같은 기분 좋은 포만감을 느끼게 된다.
「밥장사」 30년 동안 한번도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고, 매일 새벽 3∼4군데 시장을 돌며 직접 장을 보고, 지금도 주방을 진두지휘하는 주인의 정성이 맛에 배어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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