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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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세계의 명작소설들 가운데는 그 무대나 배경이 섬,특히 무인도로 돼 있는 것들이 많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대니얼 디포가 쓴 『로빈슨 크루소』가 있고 쉽게 떠오르는 작품으로 알렉상드르 뒤마의 『몽테 크리스토 백작』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같은 것들이 있다.
무인도가 이처럼 많은 소설들의 무대가 돼온 까닭은 사람들이 살고있는 세상에서는 벌어질 수 없는 여러가지 특이한 일들이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에 얹혀 다양하게 펼쳐질 수 있기 때문일 터다.
가령 『주인공이 항해도중 폭풍을 만나 배의 난파로 무인도에 상륙,28년을 혼자 살면서 몇가지 연장만 가지고 끈기있는 노력으로 마침내 그 섬에 문명을 이룩한다』는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는 그 배경이 무인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험한 세상살이에 지친 오늘날의 현대인들이 걸핏하면 「무인도에나 가서 살았으면…」하고 되뇌이는 것도 무인도에 대한 막연한 환상속에서 현실도피의 수단을 찾으려는 심리가 아닌가 싶다.
지난달에는 국민학교 6학년 어린이 3명이 무인도로 간다는 말만 남기고 가출,하루만에 월미도,영종도 등지에서 발견돼 가족에게 인계된 일도 있으니 무인도에 대한 환상은 어린이들에게까지 전파된 것인가. 이들 어린이들은 정말 무인도로 가서 「공부없는 나라」를 건설하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사회의 이같은 무인도 동경풍조가 부동산투기꾼들의 투기심리를 부채질한 모양이다. 지난주 국정감사 막바지에 국세청장이 밝힌바에 따르면 『최근 서·남해안 관광지개발과 관련해 잠재적 가치가 큰 유·무인도의 토지거래가 상당하다는 정보에 따라 투기혐의자들에 대해 조사를 벌이기로 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섬은 모두 3천4백18개,그중 3천2백1개가 투기혐의로 조사대상에 들어있다 하니 그 결과야 두고봐야 알겠지만 섬에 대한 투기꾼들의 눈독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만한 하다.
무인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 이미 무인도가 아니다. 투기꾼들은 『국토는 비좁고 무인도로 가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무인도를 개발해서 분양하는게 뭐가 나쁘냐』쯤으로 변명할까.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무인도」라는 말자체가 사라지지나 않을는지.<정규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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