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 구호 대신 "청년실업 해결을" … 운동권이 달라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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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7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대학생 10여 명의 '특별한 집회'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전국학생행진 건준위 등 소위 '운동권' 대학생들이었다. 그러나 집회에서 반미나 미군 철수 같은 정치적 구호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이들은 "정부는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라"고 외쳤다.

운동권 단체들이 청년실업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취업은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정치적 이슈를 주로 다뤄왔던 이전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전국학생행진 건준위원장인 오미혜(고려대 4년)씨는 "1980년대 선배들이 학생운동을 하던 때와는 시대가 다르다"고 말했다. "과거엔 독재 타도가 최우선 과제였지만 97년 이후 달라졌어요. 이젠 청년실업 문제가 신자유주의 같은 이슈와 똑같이 중요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청년실업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대련 의장인 김지선 덕성여대 총학생회장은 "과거엔 실업이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지만 최근엔 청년실업률이 8%에 달하는 등 매우 심각한 상황이어서 더 이상 개인이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참석자들은 졸업과 동시에 청년실업자로 전락하는 현실을 상징하는 '졸업실업증서'를 찢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경실련 박병옥 사무총장은 "운동권에서 실업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을 보니 거대 담론은 정말 옛날이야기가 돼버린 것 같다"며 "우리 사회가 변한 것을 볼 수 있는 한 단면"이라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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