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회장도 못 뽑는 전경련 존재 이유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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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창립 이래 처음으로 정기총회에서 차기 회장을 뽑지 못하게 됐다. 전형위원회에서 회장 후보조차 고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3월 중에 임시총회를 열어 새 회장을 선출하기로 했다지만 그때까지 회장감을 찾는다는 보장은 없다. 회장 선출을 둘러싼 회장단 내의 이견이 조만간 해소될 것 같지도 않다. 재계의 입장을 대변해 온 대표적인 경제단체가 회장조차 뽑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전경련은 전임 강신호 회장의 3연임이 불발되면서 이미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다. 어쩌면 강 회장 취임 이전부터 위상이 추락하고 기능이 쇠퇴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자발적인 단체에서 회장조차 뽑지 못할 정도라면 나라 경제의 비전을 제시하고, 정책 대안을 개발하는 역할은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런 정도라면 재계의 총의를 모아 정부에 쓴소리 한 번 제대로 할 수도 없다. 이럴 바에야 차기 회장 선출을 놓고 불협화음만 표출할 게 아니라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전경련의 존립 여부까지를 포함하는 철저하고도 근본적인 대안을 모색할 때가 됐다.

과거 전경련은 재계를 아울러 수출 확대와 경제 발전을 선도하는 긍정적 역할을 했다. 반면 정권 교체기마다 정부의 요구사항을 재계에 배분하는 창구 노릇을 하던 부정적 이미지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이제는 회원사 간의 격차도 크게 벌어져 사안에 따라 각 사의 이해가 달라졌다. 전경련의 입지가 좁아지고, 불화와 반목이 커진 이유다.

결국 남은 것은 전반적인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고 자유시장경제 원리를 창달하는 싱크탱크로서의 기능이다. 대기업의 이익단체로서의 역할을 포기하는 대신 기업들이 재원을 대서 설립한 미국의 헤리티지재단이나 미국기업연구소(AEI)처럼 나라의 비전과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연구기관으로 탈바꿈하라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자유시장경제 원리를 전파하는 경제교육 기능과 함께 재계 인사들 간의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를 유지하는 일을 덧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전경련의 발전적 변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