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대사 유엔가입으로 당당해진 「외교첨병」|유엔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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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남북한의 유엔가입이 실현되면서 유엔외교의 실무주역인 유엔대사가 여론의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날 한국외교가 유엔 표 대결에 집중됐을 때는 그 현장 지휘자였으며, 앞으로는 유엔무대에서의 남북대화 등 새로운 남북간의 창구로 떠오르고 있다.
초기의 한국 유엔 대사는 그 이름의 화려함과 달리 매우 「초라해야만 하는」자리였다.
한국은 유엔의 정회원이 아닌 업저버국이어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회원국 대사들에게 저자세로 「청」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 외교관들은 우리의 유엔외교를 「표 구걸 외교」라고 자조하기도 했다.
심지어 정부수립을 위한 중립국 감시단의 환심을 사기 위해 모윤숙씨가 메논단장(주 유엔 인도대사)에게 시를 바쳤고, 여성단체의 활동과 관련해 불유쾌한 소문이 퍼지는 등 사회전체가 동원됐다.
한국은 건국 초부터 유엔외교에 높은 비중을 뒀다. 한국의 독립과 정부수립이 유엔 결의를 근거로 한 것인데다 그 직후의 한국전쟁에서는 패망직전에 유엔군의 지원으로 국호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외교엘리트로 자부하는 사람만이 이 자리를 맡을 수 있었다.
현재 14대 노창희 대사에 이르기까지 외무장관을 역임한 사람이 임병직(2대)김용식(10, 15대)박동진(17대)최광수(21대)대사 등 4명이나 되는 것도 그런 사정을 뒷받침한다.
한국의 대 유엔외교는 50년대엔 친미진영의 압도적인 수적 우위 속에 일방적으로 대북한공세를 벌였다. 동서냉전시대에 한국문제에 대한 표 대결은 곧 공산권에 대한 공세의 일환이었다. 한국문제 결의안 상정을 둘러싼 표 대결이 마치 미국의 우위를 입증하고, 한국의 정통성을 보장받는 유효한 수단인 것처럼 선전됐다. 특히 친미진영의 압도적 수적 우위 아래 한국외교는 거대한 후견인의 주도적인 결정을 따르는 것뿐이었다.
당시에는 공산화의 도미노현상과 비동맹권의 좌경화로 유엔에서의 대결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시점이었다. 이 때문에 한국유엔대표부의 할 일은 1년을 매일같이 유엔총회 때 한번의 표 대결을 위해 뛰어다녀야 했다.
대사이하 모든 외교관은 세계를 지역별로 나누어 표를 다져나갔다. 총회가 열릴 때는 외무장관이 직접 유엔에가 진두지휘를 했다. 모든 공관원이 점심·저녁은 담당지역의 외교관과 식사약속을 하지 않으면 안됐다.
이 때문에 외무부에서 유일하게 「비정상 자금」이 도는 곳이 유엔대표부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른바 유엔 대책비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자금이 투입됐다.
한때 유엔에 근무했던 한 외교관은 『이러한 우리의 외교가 관행으로 굳어가자 가난한 아프리카의 외교관중에는 「월세를 못내 쫓겨나게 됐다」「아이들 학비를 못내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표를 얻기 위해서는 당해 회의장에 담당지역의 외교관이 불참하지 않도록 일일이 당부를 하고 다녀야 했다. 사실 상당수의 나라는 당시 한국의 국력으로 보아 한국문제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이들을 참석시키려면 갖가지수단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에게 찬성표를 던질 수 있는 나라 대표가 불참하지 않도록 총회장 문마다 지역담당 공관원들이 지키며 일일이 표시, 표결 전에 데려오고 표결이 가까워서는 화장실에도 못 가도록 사정하기도 했다.
심지어 화장실에서 안 나올 경우 밖에서 부르기도 하고, 자기 방에서 응답이 없으면 쪽지들 문틈으로 밀어 넣어야 했다.
우리외교가 제3세계로 향해 있었던 것도 순전히 표 문제였다.
이런 소모적인 대결은 75년 한국문제의 유엔 불상정에 동서양진영이 합의하면서야 비로소 끝났다. 그러나 이 같은 대결의 후유증으로 최근까지도 비회원국으로서 본질문제에는 관심 자체를 별로 두지 않고 있다. 또 우리가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는 산하기구에서도 전문성을 살려 담당하기보다 서열중심으로 분배, 공관원 인사가 있을 때마다 담당이 바뀌는 등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이제까지는 말이 「유엔대사」이지 유엔본부에 신임장도 제출하지 않은 업저버에 불과했다.
공관원도 뉴욕영사관에 소속시키는 비정상적인 운영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 떳떳이「주유엔 대한민국대표부」라는 간판을 건 정식회원국이 됐다. 이런 점에서 한국도 이제 단견적인 외교보다는 세계국가로서의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다시 모색해야 할 시점에 왔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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