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 룰 '셈법' 제각각 … 합의문도 못 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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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나라당 대선 주자들이 25일 서울 여의도 렉싱턴 호텔에서 당 지도부가 마련한 조찬간담회에 참석했다. 간담회는 강재섭 대표가 대선 주자들을 초청하는 형식으로 마련됐다. 원희룡 의원, 이명박 전 서울시장, 김수한 국민승리위원회 위원장, 강 대표, 박근혜 전 대표, 손학규 전 경기지사, 고진화 의원(왼쪽부터). [사진=오종택 기자]

휴일인 25일 오전 8시30분, 서울 여의도 렉싱턴 호텔 2층 연회장.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의 조찬 간담회가 당 지도부에 의해 마련됐다.

"박 대표 자리는 여기네요."(박근혜 전 대표를 향해 이명박 전 서울시장)

"한 분이 아직 안 오셨네요."(이 전 시장이 아닌 다른 쪽을 바라보며 박근혜 전 대표)

"내가 제일 늦었네요."(뒤늦게 들어서며 손학규 전 경기지사)

반가운 인사는 없었다. 한나라당 유력 대선주자 세 사람이 만나 건넨 첫마디엔 서먹서먹함이 배어 있었다. 표정은 밝지 않았고 서로 간에 어색한 기운이 흘렀다. 자리를 주선한 강재섭 대표가 "웃어 봅시다"라며 분위기를 돋웠지만 효과는 없었다.

나경원 대변인은 1시간40분간 진행된 비공개 간담회 후 브리핑에서 "대선주자들이 경선 결과에 승복하고 검증은 당이 중심이 돼 한다는 등 6개 항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나 대변인은 '합의'가 아니라 '공감'이라는 언어를 써 달라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당의 단합을 크게 강조하곤 했던 대변인이 공감이란 표현밖에 쓰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간담회장은 팽팽한 신경전 그 자체였다고 한다. 주요 주자들이 경선준비위(경준위.위원장 김수한)에 노골적으로 불신을 드러낸 것이다.

손 전 지사가 "특정인에게 들러리를 세우는 경선 룰에는 합의하지 않겠다"고 하자 분위기가 굳어졌다.

박 전 대표도 "대리인을 내세워 합의를 이루는 게 합법적인가"라며 경준위에 대한 의구심을 표출했다. 그는 이어 "경선준비위의 합의 사항이라도 전체 당원의 의견을 묻는 공식 절차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준위가 이 전 시장을 공격하는 정인봉 전 의원의 폭로 자료에 대해 "검증 가치가 없다"고 한 것에 대한 불만 표시로 일각에선 받아들였다.

이 전 시장만 "경선준비위에 재량권을 줘야 한다"고 옹호했다. 지지율 1위 인사만 가만있고 2, 3위 주자가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모양새다.

당 관계자는 "경준위를 둘러싼 대선주자 간 이해관계가 본격적으로 표출되고 있다"며 "경준위가 공정성 시비를 제대로 헤쳐나갈 수 있을지, 제대로 기능할지 걱정"이라고 했다. 이날 강 대표는 주자 간 의견을 모아 경선 결과 승복 등의 내용을 담은 '합의문'을 발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손 전 지사가 "경선 룰에 대한 현실적 이견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문서를 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주장해 채택이 무산됐다.

◆주요 발언

▶박 전 대표="원칙을 바꾸려면 당원의 의견을 물어야 한다. 당원이 합의한 것을 후보들의 합의로 바꿀 수 없다. 우리 당은 부정부패의 오명으로 망할 뻔했는데 경선 과정에선 어떠한 불법이 있어서도 안 된다. 그런 일이 있다면 후보가 사퇴해야 할 것이고 관여한 사람은 출당시켜야 한다."

▶이 전 시장="경선 시기나 방법에 관해선 조직과 기구가 있으니 거기서 논의하는 게 맞다. 외부에서도 당이 깨지길 바라는 사람이 많으니 함께 잘해 나가자.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참여 안 하겠다는 일이 있을까봐 가장 걱정된다."

◆강재섭 "검증 청문회 검토"=경준위에 불신이 높아가고 있는 가운데 강 대표가 "도덕성 검증 문제가 계속 제기되면 당이 주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 원로나 언론인.종교인을 포함하는 청문기구를 만들고 의혹들을 모아 청문회를 개최하는 것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글=신용호 기자<novae@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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