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단,불심을 회복하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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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불교 조계종이 9개월동안의 지루한 종권다툼끝에 마침내 종단을 두동강내는 분종상태로 치닫고 말았다. 종단 양분의 비극은 서의현 총무원장측을 반대하는 중흥회측 승려와 종도들이 26일 통도사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서원장 해임 결의와 함께 중흥회 총재인 채벽암스님을 새 총무원장으로 추대함으로써 현실화 됐다.
우리는 우선 다툼의 명분과 주장들의 시비를 떠나 조계종의 분종이라는 비극을 불자들 못지않게 아파하지 않을 수 없다. 조계종은 1천6백년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오면서 「민족종교화」한 한국불교의 법맥을 계승하고 있는 대표적 불교종단이다. 이같은 중요한 민족적 종교유산이 「닭벼슬만도 못하다는 중의 벼슬」 싸움으로 상처를 입고 있는데 대해 어찌 아픔을 느끼지 않을수 있단 말인가.
아픔을 더해주는 또 하나의 비통함은 그 찬란한 불법의 광명으로 세속중생을 제도할 불교 본연의 종교적 책무가 헌신짝처럼 버려진채 거꾸로 세속사회의 추악상을 능가하는 추잡한 작태를 거듭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속은 부모형제라는 인연까지를 과감히 끊고 자신의 모든 육체적 실존을 내던진채 불도정진의 길을 향하는 스님들의 가출을 「출가」라 하여 신성시한다. 최근 30여년동안 계속돼온 한국불교의 갖가지 내분과 세속법정에서의 쟁송추태는 과연 승려들이 득도를 위한 출가를 한 것인지 불량배로서의 「가출」을 한 것인지를 가늠키 어려울 정도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구름과 물을 벗해 심산유곡을 주유하면서 수행에 정진하는 스님들을 운수납자라고도 한다. 옷도 탁발해 얻은 헝겁조각으로 깁어입고 걸망 하나에 누더기옷 두벌이 전재산인 운수납자들은 세속적인 명예나 권력은 물론 일체가 「공」이고 「무」라는 초보적인 불법에 매달리는 집착까지를 거부한채 철저한 궁경의 무소유를 지향한다.
우리는 승려도 먹고 입고 사는 현실적 인간존재라는 점에서 이러한 불교 본연의 심오한 수행상을 엄격히 고집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세속중생은 승려들에게 단순한 삭발염의라는 표피적 이색성을 뛰어넘어 속인과는 다른 마음가짐과 몸가짐의 작법을 보여줄 것을 전통적으로 갈망해 왔다.
특히 이번 조계종 종권분규의 핵심이 되고 있는 승려의 도덕성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처승 「정화불사」를 존립 명분으로 하고있는 조계종단에서 종단 지도승려의 대처문제가 공개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는 것은 그 사실여부를 떠나 치명적인 치부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또 서원장의 도덕성문제를 증권다툼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반서측의 일부 승려들 역시 그들 스스로가 문제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지난날 서원장 옹립의 주축이었다는 점에서 선명한 도덕성을 내세울 형편이 못된다.
조계종단의 내분 수습책은 이미 나와 있다. 때묻지 않은 수행승려들이 제시한대로 양측 모두가 즉각 퇴진하고 제3의 세력으로 새로운 총무원집행부와 종회를 구성,종풍과 승단기강을 일신하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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