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과문화

친디아 대신 인코 ?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나는 아시아 영화에 관심을 갖고 지난 몇 년간 중국과 인도에서 열리는 국제 학술회의에 참가해 왔다. 중국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칭다오(靑島)시에서 있었던 베이징 전영학원의 제2 캠퍼스 개관 준비 행사였다. 베이징 전영학원은 장이머우와 천카이거 등 제5세대 영화감독, 그리고 현재 평론가들이 가장 주목하는 자장커 감독을 배출한 학교로 이름난 곳이다. 베이징 전영학원과 칭다오시는 베이징 전영학원이 영화 중심이라면 제 2캠퍼스는 디지털 중심의 교육을 할 것이라고 밝힌다.

저장(浙江)성 항도인 닝보(寧波)에서 열렸던 중국 영화 '영웅' 읽기 학술회의는 중국 최초의 외국 대학이라는 영국의 노팅엄대 닝보 캠퍼스가 주관한 것이다. 영국 본교의 건물들을 시계탑까지 그대로 재현해 지었다는 이 캠퍼스엔 영어 수업을 통해 '세계'를 배우려는 중국 학생들이 주로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다. 중국의 뉴미디어 교육과 글로벌화는 이렇게 진행되고 있었다.

인도에서 '글로컬', 즉 로컬과 글로벌의 이상적인 조합으로 다가왔던 곳은 첸나이였다. 예전에 마드라스로 불리던 곳으로 남부 벵골만에 접한 바닷가 사원들이 아름다운 도시다. 인도 실리콘 밸리로 알려진 방갈루루에는 CSCS(Center for the Study of Culture and Society)라는 이름의 연구소가 있다. 이곳에선 같은 아시아권이지만 지식 네트워크가 제한적이었던 동남아시아.남아시아.동아시아 지역의 지식인들을 연결하는 심포지엄을 개최하곤 한다. CSCS의 '아시아 영화를 어떻게 연구하고 교육할 것인가?'란 학술회의 때 첸나이에서 온 문화 관계자들을 만났다. 첸나이에는 인코(InKo) 센터라는 인도와 한국의 문화 교류를 위한 문화원이 설립됐다. 라티 제이퍼 원장은 영국 문화원에서 활동하다가 인코 센터로 옮긴 활달한 문화 행정가다. 첸나이에 공장이 있는 현대자동차의 지원을 받고 있는 인코 센터는 한국어 교육, 한국과 인도의 문화 교류를 목표로 하고 있다.

방갈루루 회의를 마친 뒤 나는 첸나이로 가 인코 센터와 LV 프라자드 영화학교가 공동 주최하는 행사에 참석했다. 내 다큐멘터리 '거류'를 상영하고, 한국 영화 세미나를 병행했다. '괴물'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어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이 일고 있었다. 토론 시간에는 첸나이와 케랄라 지역에서 온 학자들이 활발하게 의견을 교환했다. 나는 그들의 박식함과 날카로움, 열린 지성에 매혹되었다. 다문화, 다언어권답게 토론자들은 한국이라는 타문화를 말라얌.타밀 언어권의 인도 남부 문화와 섬세하게 비교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밤새 인터넷을 뒤적여 한국영화 관계 자료를 읽고 온 학자도 있었다. LV 프라자드 학교 학장은 할리우드가 아니라 한국으로부터 음향 녹음기술과 애니메이션을 배우고 싶다며 관계자를 초빙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첸나이의 이러한 지적 풍토가 미국식의 일방적 세계화가 아닌, 그리고 중국과도 다른 대안적 '아시아 세계화'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느꼈다. 인코 센터를 지원하는 현대 측 관계자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빨리 빨리!'가 아닌 한국의 마음을 첸나이에 전하고 싶다." 친디아 대신 인코 네트워크가 뜰 수 있을까?

김소영 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