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자의 골프이야기] OB로 혼쭐난 어느 프로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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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전 이야기이다.

30대 초반정도 돼 보이는 프로님 한 분과 40~50대 건장한 남자 고객님 세 분의 도우미를 한 날이었다.

“김프로님. 늘 실내에서만 봐오던 프로님의 실력을 오늘에서야 볼 수 있겠군요.”

모두들 설레임 반 기대반인 듯한 모습이었다. 첫 홀은 느슨하게 우측으로 휘는 홀로 우측은 OB지역이다.

먼저 프로님의 티 샷. 왠지 티를 꼽는 모습부터가 어정쩡하고 어딘가 약간 어리숙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땅~. 그는 우측을 많이 보구 최단거리로 호쾌한 장타를 날리고 싶어했으나 슬라이스가 심하게 났다. 내 구력과 느낌상으로 볼 때 확실한 OB. 앞 팀 캐디 언니가 황급히 내게 무전을 날려왔다.

“너희 팀 지금 친 볼 O~~B ”

나는 한쪽 구석으로 재빨리 달려가 다른 일행 분들이 듣지 않게 그 볼을 페어웨이 쪽으로 조금만 옮겨달라고 말했고 일행들에게는 “네 프로님 아주 잘 치셨습니다. 역시 프로님이십니다”라고 멘트를 날려주었다.

프로님 왈~ “여러분 원래 프로들은 이렇게 도전적으로 치는 겁니다.”

아무튼 앞 팀 언니가 지옥에서 천당으로 던져 놓은 볼로 그 프로님은 간신히 파를 하고 첫홀을 지나갈 수 있었다.

몇 홀은 그럭저럭 갔는데 이후 터무니 없는 왕슬라이스 OB에 뒤땅. 벙커 샷 홈런까지 보여주었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프로님. 프로님”하면서 따라다니던 일행들의 눈빛은 급기야 싸늘해지고 말았다.

후반 첫 번째 홀. “어이. 김프로 물론 내가 아너(Honor)지만 먼저 쳐 봐.” 완전 프로님을 무시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 프로님은 또 대마왕 슬라이스를 내는 것이었다. OB지역은 아니었지만 볼이 살아도 살은 게 아닌 듯했다.

“어이. 김프로 뭐야. 에이. 실망이야.”

고개숙인 프로님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눈물이 다 나오려고 했다. 때마침 내가 가지고 있던 여유 볼이 그 프로님이 플레이하는 볼과 동일한 볼이었다.

나는 재빨리 프로님의 바지주머니 속에 볼을 집어넣고 속눈썹 몇 개를 깜빡이며 “얼릉 가서 알을 까세요. 여긴 제가 책임질께요”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난 분위기를 잡았다.

“하하하~ 아마 그 볼 라이 좋은 곳에 살아있을 겁니다. 여기서 봤을 땐 슬라이스가 난거 같지만 원래 프로님이 친 방향이 교과서 방향입니다.(-)”

“아~ 그래? 그 정도로 쳐도 볼이 살아있는단 말이지?”
“네. 그렇구말고요.”

그 프로님은 내가 몰래 넣어준 볼을 가지고 재빨리 우측 언덕으로 발이 안보이게 뛰어갔다.

“여깄다 ” 프로님은 마치 처음부터 볼이 살아 있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100야드 지점 언덕에서 두 번째 샷을 했고. 그 홀에서 버디를 할 수 있었다.

“역시 프로님이십니다.” 나는 다시한번 일행들이 듣도록 칭찬 멘트를 날려주었다.

“오우~ 그러네. 우리는 OB난줄 알았는데 위기를 기회삼아 버디를 하는구만…. 역시 김프로님이야.”

김프로님은 어색한 미소를 날렸다. 부끄러운 행동인걸 알았지만 초스피드로 알을 까고 샷을 했었나보다. 물론 오늘 캐디로서 내 행동도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프로님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한 행동이었기에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프로님 레슨만 열심히 하시지 말고 연습 좀 하세요. 너무 힘든 하루였잖아요.(-;;)

[일간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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