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세계바둑오픈' - 이창호, 흑▲의 창끝에 피 흘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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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제8회 세계바둑오픈 8강전
[제5보 (62~83)]
白.李昌鎬 9단 黑.謝 赫 5단

이창호9단은 오랜 궁리 끝에 62로 끊었다. 외곽의 두터움을 허용하느니 우변 백 넉점을 버리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창호다운 냉철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관전자들은 피가 주르륵 흐르는 듯한 이 장면에 "다 죽이는구나"하며 비명을 터뜨리고 있다.

66은 정수다. 이 수로 '참고도' 백1로 밀고나가는 것은 백7 때 흑8로 끊겨 양쪽 백대마가 모두 휘청거리게 된다. 68로 막아 일단의 접전이 끝났다. 백 후수. 백은 넉점을 내주고도 후수를 잡았다. 처음에 백은 흑을 공격하고 있었는데 어느덧 백이 죽어버렸다. 셰허5단의 흑▲가 빛나는 전공을 세운 것이다.

검토실에서는 이창호9단의 대 위기를 긴장과 호기심이 뒤섞인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유창혁9단은 상변을 69, 71로 두는 수가 좋다고 했는데 셰허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치의 오차도 없이 두어온다. 백의 위기는 깊어가고 있다.

그러나 셰허는 자신이 유리하다는 사실을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상대가 워낙 거목이기에 당하지 않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여왔을 뿐 우변에서 자신이 크게 득점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국후 그는 이무렵 내가 유리했느냐고 반문했다).

이창호9단은 내심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흑▲에 이어 69, 71이 또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 있다. 76은 힘을 낸 강수. 긴 추격전의 서곡이기도 하다. 이 수는 물론 A를 노리고 있다. 셰허는 조심조심 77 막고 그 틈에 백은 80까지 벌어들였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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