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교수 전성시대/조두영(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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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때 그랬었는지,두고두고 그랬는지 교직은 비인기직종이었다. 장에서 몽땅 거둬가기 때문에 뒤로 새나올 영양분이 없다는 뜻이었겠지만 「훈장의 똥은 개도 안먹는다」는 말은 지독한 인색과 가난의 악취를 풍겼었다.
병원에서 만나는 중년여자환자 가운데 처녀적 고상한 풍모가 찌그러져 들어와 위궤양·신경성위염으로 진단받고 허우적거리며 나가는 상당수가 60년대까지만 해도 교수부인들이었다. 그뿐인가. 교직자들은 술집에서도 낙인찍혀 한잔 시키고 오래 앉아 있든가,아니면 본전이라도 빼려는 듯 옆자리 숙녀에 대한 손버릇이 나쁘다는 평판에서 였다.
○가장 인기있는 직종
그런데 어느사이 사태가 역전되었다. 이제 교수는 사회발전·경제발전의 기관차격인 지식인으로서 사사로움에서 초연하게 처신한다는 명예를 지니게 되었으며 만만치않은 월급에다 연중 반을 방학으로 유유자적하면서도 동료와 재단에 크게 미움사지 않는한 65세까지 보장받는 인생이 된 것이다. 매스컴은 한마디씩 떠드는 교수들로 꽉 찼으며,국가대사자문에도 이들이 자리를 휩쓸고 있고,성명도,데모도 교수들이 하면 톱기사가 되는 판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몰린다. 대학생들에게 교수직은 가장 인기있는 직종으로,사윗감으로도 판·검사와 의사를 제친지 오래다.
시인·작가·연주가·화가들도 그 길로 들어서면 창조력과 예술성이 금갈줄 뻔히 알면서 교수직에 매달리며,심지어는 부잣집 며느리까지 시간강사의 명예를 얻으려 기를 쓴다. 「나처럼 고생말고 편케 지내라」면서 성공한 기업인들마저 자식은 교수직쪽으로 밀고 있다.
때는 바야흐로 교수전성시대­.여기저기 호텔사은회에서는 호기찬 중년들의 너털웃음이 새어 나온다. 나 또한 도매금으로 덩달아 영예를 누리면서 속에서 동업자들을 평하기에 족할 안목을 지니게 되었는데,이를 희화적으로 쪼개보면 다음과 같은 네부류가 된다.
그 첫째로 「부골형」교수가 있다. 과거와 현재 모두가 유복한 이들은 공부보다 명예와 편함에 비중을 두며,행동거지가 다소 사치스럽고 동료와 경쟁을 피하면서 한직의 보직을 즐긴다. 학생들을 대할 때는 자기쪽에서 먼저 좋아하고 싫어하는 학생을 구분해 놓고 남이 훤히 알도록 그렇게 처신한다.
두번째는 「행정가형」교수다. 두뇌·정열·성격같은 모든 면에서 나무랄데 없은 분들인데 불행한 것은 전공을 잘못 택했거나 교수직자체가 이들에게 덜 맞는 점이다. 공무원으로나 기업체로 나갔다면 우러러 뵐 사람이 끙끙대고 연구논문쓰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운데 이런 고통스런 시기를 지나 중년이 되면 중요보직을 맡으면서 해방되고 또 맡으면 잘한다. 그러다 놓치면 한숨을 쉬는데 학생들에게는 일률적으로 엄하게 대한다.
셋째,「전도사형」이 있다. 성장기의 좌절을 극복하고 어렵게 교직대열에 낀 이들은 대인관계를 우습게 알며 자기와 자기전공을 지나치게 내세우고,강자와 보직자를 싫어한다. 강의는 꼼꼼히 준비하나 자기를 따르는 학생들만을 노골적으로 편애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평가가 양극을 이룬다.
○서구엔 괴팍형 많아
넷째는 「괴팍스런 샌님형」이다. 대학간판아래가 아니고는 그 어디서도 발붙이기 어려운 분들로 장기라고는 그저 혼자 공부하는 것 밖에 없다. 차례도 오지 않겠지만 어쩌다 큰 감투 하마평에 오르면 기겁을 하는 이들은 유독 경쟁상대가 되지 않는 학생들 앞에 설때 가장 마음편해 한다. 이들은 자신을 덜 내세우면서도 학생들을 능글맞게 휘어잡아 편애없이 끌고 나간다.
이상은 특징을 확대해 본 것으로 교수들은 그 어느 것의 혼합형태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면 서양쪽 교수들은 어떨까. 좁고 표피적인 사견이겠지만 그쪽 교수들은 대개 중류출신으로 월급도 그렇고 사회적 대우도 중상류밖에 안된다. 허름한 차,후줄그레하면서 다소 심통맞게 생긴 용모,대중석상에서 쭈뼛거리는 성격,자신을 그저 평범한 사회부품으로 간주하는 자화상이 그들의 특징이라는 생각이다.
따라서 학생들도 교수의 해박한 전공분야지식은 우러러 보되 그 인간을 존경하는 정도는 퍽 약하다. 또 똑똑한 학생들중에서도 교수직 희망자가 적다. 요컨대 그쪽은 「괴팍형」교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말이다.
다소 예외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한국대학사회의 학문수준은 총론수준에 머물러 있다. 더러 각론분야를 깊이 파는 교수들이 있지만 어쩐지 그 각론도 해당분야의 핵심에서 벗어난,인체로 치면 새끼발가락 발톱연구라는 경지에 있는 것도 같다.
○우리학문 총론 수준
핵심각론에 해당하는 것은 아직도 외국 것을 그대로 들여다 쓰는 형태로 학문도 우리 기술수준과 다를 바 없는데 이렇게 가다가는 정보사회에로의 비약이 불가능하다. 우리도 선진국처럼 각론분야 교수진이 두껍게 깔리는 날이 와야 하고,그러하려면 교수수를 대폭 늘리되 임용후에도 중간 중간에 교수자격심사를 엄격히 실시해 공부 덜하는 사람을 추려내야 겠다.
이런 심사그물에서 살아남을 교수는 결국 「괴팍스런 샌님형」이 주가 될 것인데 생각해 보라­. 밤낮 공부만 하고 젊은 사람들만 상대해 비슷한 말을 십여년씩 물리지 않고 이죽거려야 하는 직업이 뭐 그리 좋은가.
교수의 전성시대도 어서 저물었으면 하는 마음이 그런 뜻에서 크다.<서울대 의대교수·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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