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편의주의(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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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구시대의 유물이 돼야할 행정편의주의가 새삼 만연하고 있다. 오죽하면 행정부와 한통속인 여당에서까지 이를 비판하고 나섰겠는가.
고속도로 통행료 인상등 정부측의 세금인상 방안을 협의한 당정회의에서였다. 당측은 사전협의가 없었음을 지적하면서 『이는 행정부의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고속도 통행료 인상의 재검토를 요구했지만 결과는 지난 1일부터 크게 인상되고 말았다. 당측은 또 예산반영과 국공채발행 등을 통한 사회간접자본의 투자확충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행정부는 여전히 세금인상과 신설 등을 통한 사회간접자본 투자재원 조달을 밀고 나가고 있다.
서울시의 예다. 지하철 5호선의 낙원정류장 구조물 공사를 위해 몇개의 기존건물 앞면들을 당사자들과의 사전협의도 없이 3m씩 철거키로 했다. 이런 결정을 내린지 5개월이 넘도록 건물주들에게 통고도 하지 않았다. 소문을 듣고 진정하자 『이미 결정난 것이니 어쩔 수 없다』는 태도다.
청와대 사회간접자본 투자기획단이 4일 내놓은 「민간자본 유치촉진 특례법안」에도 행정편의주의가 번뜩인다. 민자유치가 불가피한 점은 인정된다. 그러나 토초세·개발부담금 면제 등과 같은 초법적인 인센티브제공은 부동산투기와 특혜시비를 불러일으킬 게 뻔한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다.
얼마전 문화부는 여론조사 결과와는 전혀 달리 내년을 「춤의 해」로 정해버렸다. 여론조사는 「국악」이 가장 많았고 춤은 조사대상 9개분야중 여섯번째였다. 결과를 정책수립에 반영도 않으면서 국민을 구색 맞추기 들러리로 세운 셈이다.
행정편의주의는 3공 개발독재와 5공 권위주의통치 시절 크게 위세를 발휘하면서 나름의 업적도 남겼다. 그러나 지금은 민주화시대다.
정부는 적체되고 있는 도로·항만 등의 사회간접자본 문제에 우선 정책적 단견을 겸허히 반성하고 투자재원 마련에도 국민중지를 모아야 한다. 무역수지 적자도 그렇다. 수출액수 조작등으로 위기를 호도해서는 안된다. 차라리 툭 털어놓고 「위기의식」을 호소하는게 민주화시대의 행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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