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정신차릴 때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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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욕망이란 끝없이 만족할줄 모르는 속성을 지닌 것 같다. 의식주등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천장 모르고 치닫고 있는 사치와 과소비풍조는 합법과 불법을 가릴 것 없이 무소불능으로 만연하는 현상을 빚고 있다.
수백만원,수십만원 하는 외제 물건들이 비쌀수록 잘 팔리고 있다. 장난감상점·문방구·구멍가게까지 외제 천지다. 유흥업소와 음식점은 고급일수록 자리잡기가 힘들 정도로 만원을 이룬다고 한다. 백만원대 어린이 파티도 드물지 않고,아예 어린이 파티용 전문 음식점도 성업중이라는 소식이다. 어디 그뿐인가. 골프여행·보신관광·낚시·수렵은행·어학연수를 빙자한 청소년의 해외여행 따위 사치성 해외여행은 해마다 최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여행자들의 씀씀이도 헤퍼서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관광객의 두배나 되는 돈을 흥청망청 써가며 돌아다니는 것이 우리 관광객들의 행태다.
이런 사치와 낭비가 절대다수의 서민들이야 언감생심 어찌 흉내라도 내볼 수 있는 일인가. 모두가 돈푼깨나 벌고 권력깨나 행사한다는 졸부들이나 이른바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의 작태인 것이다.
이들의 사치와 낭비는 여기에서 그치질 않는다. 그린벨트나 농지·임야·상수원 보호구역 가릴 것 없이 산수 좋고 풍광이 수려하면 법을 어기면서라도 호화별장을 짓고 산다. 수천평짜리 잔디밭도 만들고 수영장도 갖춘다. 이런 곳에 호화판 유흥 음식점을 차려놓고 고급손님 유치해서 돈버는 일거양득의 잇속을 챙기는 자들도 있다.
이런 사치와 과소비가 한정된 특권·부유층에 국한되지 않고 전체 국민의 의식과 가치관에 널리 악영향을 준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특수계층의 사치풍조는 일반 서민에게 위화감 조성은 물론 이를 쫓아가 모방하려는 추종·모방심리를 충돌질한다는 점이다. 위화감은 계층간의 불화와 갈등을 초래하고 적대감으로 번져 사회불안요인이 된다. 지난 수년동안 지속돼온 노사대립이나 학생소요 또는 이념갈등의 밑바탕에 이런 요인이 도사리고 있음을 부인키 어렵다.
우리사회에 만연돼 가는 향락풍조의 원인제공자들이 바로 이런 사치·향락 행태를 일삼는 특권·부유층들임을 직시해야 한다.
그런가 하면 근로자들은 어렵고 힘든 제조업을 피해 편하고 쉽게 돈벌이기 되는 서비스업종으로의 이동현상을 보이고 있다.
투철한 근로의식이나 노동에 대한 사명감이 희박하기 때문에 생산제품의 품질이 떨어져 국제적으로 한국상품은 신뢰를 잃어가고 해외구매자들은 다른 나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그 결과 국내 물가는 올라가고 국제수지는 달마다 사상 최악의 적자기록을 경신해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선진국의 문턱에서 다시 후진국의 나락으로 떨어질 위험이 크다. 이른바 남미식 좌초를 막을 수 없다.
세계 제5위의 부국이었던 아르헨티나가 지금의 세계 3위의 채무국이 되어 연간 4천%의 인플레에 시달리는 후진국으로 전락한 직접 원인이 국민의 사치와 과소비였음을 상기해야 한다. 아울러 2차대전후 폐허에서 출발한 일본이 지금 세계 경제를 지배하다시피 된 이유가 국민의 근검절약과 근면이었음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4배나 많은 일본인들은 여전히 우리보다 훨씬 검소한 생활을 하며 부지런히 일하고 있다.
우리 모두 정신을 가다듬어야 할 때다. 우선 사회지도층의 반성과 자책이 있어야 한다. 검소와 근면을 수범해야 국민들도 함께 따른다. 지도층부터 각성해서 사치와 향락의 폐습에서 탈출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정부가 사회지도층의 사치와 과소비를 사정차원에서 엄중히 단속하기로 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이러한 정부의 자세가 단발적이고 전지적인 엄포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과거 수차례 이런 식의 강경방침을 선언하고 나섰으나 그 결과가 용두사미였음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보아온 터이기 때문이다.
국가 앞날의 명운을 좌우한다는 심각한 각오와 결단이 있기를 바란다. 특권층의 비리와 부정,부유층의 사치와 낭비를 바로잡지 않고는 사회 전반에 만연된 망국적 풍조를 바로 잡을 수 없다. 국민들도 홍수처럼 밀려 들어오는 외제상품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고 분수에 맞는 생활자세를 갖도록 해야 한다. 지금 정신차리지 않으면 가까스로 땀흘려 이룩해 놓은 우리 경제가 물거품이 되고 말 위기에 우리는 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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