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GB는 「공포」의 상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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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독재의 “칼과 방패”로 정치 공작/원조식량 배급 감독 기능까지
지난 수십년간 국가보안위원회(KGB)는 소련공산독재정권의 「칼과 방패」였으며 그 이름만으로도 탄압과 공포를 연상시키는 막강한 권력기관이었다.
그러나 지난주 강경보수파들의 쿠데타 기도가 실패한후 이에 깊숙이 가담했던 KGB의 위치는 결코 전과 같을 수 없다.
고르바초프는 28일 KGB 중추 조직인 국장협의회의 해체를 명령하는 한편 모든 조직을 새로 의장에 임명된 진보파 바딤 바카틴의 지휘아래 두는 포고령을 발표했다.
고르바초프는 동시에 수십만명의 KGB 병력을 국방부의 지휘 계통아래로 옮길 것도 명령했다.
「공산 독재의 폭압 수단」으로서의 KGB는 그 존재를 마감한 셈이다.
KGB의 원조는 지난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후 펠릭스 제르진스키가 창설한 「체카」였다.
체카는 독재자 스탈린치하에서 NKVD로 모습을 바꾸었으며 수십만명의 반체제 인사들을 「파괴주의자」혹은 「인민의 적」으로 몰아 수용소 군도로 유배하는 악명을 떨쳤다.
KGB는 군,그리고 공산당과 함께 소련독재채제 3대 기둥의 하나였으며 그 간부들은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 왔다. 고르바초프의 보호자였던 유리 안드로포프는 KGB의장 자리에서 바로 크렘린의 주인이 될 정도였다.
KGB는 해외 간첩망을 통해 적국들의 군사 비밀을 훔쳐왔으며 최근에는 경제·기술 분야의 스파이 활동에 중점을 두어왔다.
89년 동구의 민주 혁명때까지만 해도 KGB는 위성국들 정보망의 상부조직이었고 특히 동독의 슈타시와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었다.
85년 고르바초프가 집권,글라스노스트(공개)정책을 추진하자 KGB의 변화가 시작되었으나 그 권력은 대부분 그대로 유지되었다.
KGB는 수만명의 민간인 요원을 유지하고 있으며 지난해 한 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소련국내에서 최소한 15만명의 군대와 국경지대에서 30만명 이상의 군대를 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블라디미르 크류츠코프 체제아래에서 KGB는 경제 범죄를 소탕하고 서방원조식량의 배급을 감독하는 기능을 담당해왔다.
고르바초프를 축출하려던 「8인비상사태위원회」의 하나였던 크류츠코프는 현재 체포되어 사형을 받을 운명에 처해있다.
고르바초프 명령에 따라 조직의 구조와 기능을 개편하게 될 KGB는 더이상 정치경찰의 기능을 담당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개혁파로 변신한 전KGB요원 올레크 칼루킨은 『새로운 모습의 KGB가 대외적인 첩보업무만을 담당하면서 헌법을 보호하는 정상적인 경찰이 되어야한다』면서 『독약이나 비밀무기들을 만들던 비밀공장들을 폐쇄하고 도청이나 대통령경호 등에서도 손을 떼어야한다』고 촉구했다.<모스크바 로이터="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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