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잇단 비극 … 국민배우 안성기씨 특별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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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정다빈(27.본명 정혜선)씨가 10일 서울 삼성동 한 빌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정씨가 자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예계 후배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국민배우 안성기(55)씨가 본지에 글을 보내 현 상황을 보는 대선배의 착잡한 심경을 전했다. 1957년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해 올해 연기생활 50년을 맞은 안씨는 "인기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는 게 연예인의 운명이지만 모든 일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일 자체를 감사하게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관계기사 11면>

무언가에 세게 맞은 듯했다. 재능도 맘껏 펴보지 못한 연예계 후배들의 잇따른 비보(悲報)에 큰 충격을 받았다. 가슴이 답답했다.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들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선배로서 적잖은 책임을 느꼈다.

'메뚜기도 한철'이라는 속담이 있다. 연예계에서도 자주 인용된다. 스타의 인기는 '한철 장사'라는 뜻일 게다. 일리가 있다. 사실 영원한 인기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연예인만큼 미래가 불확실한 직업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가장 싫어한다. 또 동료.후배들에게 절대 이 말에 흔들려선 안 된다고 말한다. 인기는 그때그때 높아지기도, 낮아지기도 하지만 순간의 성공과 실패가 연기, 혹은 노래의 모든 걸 좌우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한철'보다 '여러 해'를 보자고 권한다. 우리가 선택한 이 일은 우리가 평생을 건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연예인은 인기를 먹고산다. 그렇다고 그게 전부는 아니다. 무릇 이 길을 선택했다면 성공했어도 "뭐 그 정도야" 하며 으스대지 말고, 실패했어도 '뭐 그럴 수 있지' 하며 받아들여야 한다. 작은 일 하나에 일희일비하면 곤란하다. 당장은 힘들고 괴롭더라도 기회는 언제든 또다시 올 수 있다.

일이 뜸해지거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을 때도 마찬가지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시간과 기회로 받아들이자"하며 감사와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게 현명하다. 연예인이나 일반인이나 다를 게 없다.

연예계도 많이 달라졌다. 가족 같은 따뜻한 분위기를 이젠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예전엔 힘든 일이 생기면 서로 정을 나누며 용기와 위안을 주곤 했는데 지금은 모든 게 비즈니스 차원에서 이뤄진다. 인간관계가 생략되고, 오직 업무로만 연결된다. 인간적 유대가 끼어들 틈이 좁아졌다.

이런 현실은 어린 연예인에게 매우 벅찰 것이다. 경험이 많지 않은 그들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당황하게 된다. 주위에 도움을 청할 곳이 마땅치 않아 더 외로워할 수 있다. 특히 인기 정상을 달리다가 갑자기 찾는 이가 줄어들면 심한 좌절감과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

이를 극복할 방안은 딱히 없다. 연예계에 첫발을 내민 그 순간의 마음, 즉 초심(初心)으로 버텨가야 한다. 지금 상황이 나쁘더라도 연예계 입문을 준비하던 때보다 좋아진 건 아닌가 하는 긍정적 태도가 중요하다. 그토록 바라던 세상에 들어온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지 않은가. 많은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연예인 본업에 만족해야 한다.

인기나 부는 그 다음에 따라오는 것이다. 일 아닌 다른 것을 좇다 보면 항상 마음이 허허해진다. "그래도 지금이 처음보다 낫지. 하고 싶은 일 하는데 뭐. 조금 더, 조금 더, 모자라는 것을 채워가면 되지" 하는 자세가 지혜롭다.

연예인은 상승 곡선만 그릴 수 없다. 올라가면 떨어지는 게 이치다. 일의 성취감은, 삶의 행복은 타인과 환경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우러나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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