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반복되는가(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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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역사는 반복되는가. 적어도 소련의 현대사를 보면 그 질문이 절로 나온다. 흐루시초프는 그때도 흑해연안의 휴양도시 크림반도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크림반도는 러시아의 남서부,우크라이나 남쪽끝의 반도에 자리잡고 있다. 아열대성 기후로 공기가 부드럽고 산간엔 삼림이 우거지고,평원에는 오렌지와 포도밭등 과수원이 지평선 너머까지 뻗어있다. 해변 또한 흰 모래밭이 융단처럼 펼쳐져 있다.
1964년 10월14일 흐루시초프가 그곳에서 쉬고 있을때 느닷없이 공산당중앙위전체회의가 소집되었다. 당제1서기장인 흐루시초프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회의는 일사천리로 흐루시초프의 사임을 결정했다. 겉으로는 「고령과 건강상의 이유」라고 발표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브레즈네프의 「조직적인 쿠데타」였다는 사실은 그 얼마후 권력을 장악한 그의 행적으로 금방 알 수 있었다. 당에서 지적된 흐루시초프의 허물은 세가지 였다.
첫째,호언장담형 정치 스타일. 무소불위로 큰 소리를 치는 흐루시초프는 조령모개식 정책으로 행정을 어지럽혔음. 둘째,농정의 실패. 셋째,인민대중에 영합하는 정치로 당엘리트의 반감을 샀음.
그러나 그보다 깊은 뿌리는 1956년 당대회에서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주의와 그의 추종자들을 맹렬히 비난한 것에 있었다. 당료들은 흐루시초프를 밀어내지 않으면 자신들의 지위가 위협받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후 27년. 오늘 우리는 똑같은 상황을 고르바초프의 실각에서 보고 있다. 발표는 「건강상 이유」지만 그 저변엔 흐루시초프의 상황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당이나 비밀경찰 또는 군의 지원이 없는 고르바초프의 정치 기반,페레스트로이카에서 비롯된 골수 보수주의자들의 소외감과 불안,경제의 부진 등은 보수파강경그룹들로 하여금 쿠데타의 명분과 유혹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흐루시초프가 당했던 것과 어쩌면 그리도 같게 고르바초프는 당하고 말았다.
반복되는 역사속엔 진보도 발전도 없다. 세계가 안타까워하는 것은 바로 그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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