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은행가에 합병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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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치열한 경쟁자였지만 어느날 갑자기 한집안이 된다. 둘이 힘을 합쳐 「고지」를 선정하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전략이다.
지금 미국 은행가엔 이 같은 합병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이에 따라 대형은행들의 순위가 하루아침에 뒤바뀌고 있다.
총자산 기준으로 미3위인 뱅크아메리카와 6위인 시큐리티퍼시픽은행은 지난12일 전격적인 합병을 발표했다.
시티은행에 이어 2위를 줄곧 지켜온 뱅크아메리카는 지난 7월15일 6위였던 케미컬은행과 7위인 매뉴팩처리스하노버 은행의 합병으로 3위로 밀려났었다.
7월22일엔 노스캐롤라이나은행 (NCNB, 미8위)과 C&S소브랜은행 (11위) 의 합병으로 3위 자리마저 내주고 말았다가 약 한달만에 2위자리를 되찾았다.
초대형은행들이 한달새 3건의 합병을 이뤄낸 것도 놀랄 일이지만 이 같은 합병 붐이 초기단계에 불과하며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은 세계 금융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다.
16일자 월스트리트저널지는뱅크아메리카는 현재 코네티컷주의 대형은행인 쇼뭇은행과 다른 4개 은행을 더 사들이기 위한 협상을 진행중이라고 전하고 있다.
이것이 성사될 경우 뱅크아메리카는 시티은행을 누르고 정상에 올라설 수 있는 상황이다.
시티은행도 이 같은 「위협을 의식, 모종의 합병을 추진중인데 그 대상이 5위인 체이스맨해턴은행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이밖에 웰스파고은행(8위)과 퍼스트인터스테이트은행(9위)의 합병도 임박했다고 외신은 전한다.
현지 전문가들은 은행간 합병 붐은 90년대말까지 계속될 전망이며 몇년후에는 총자산이 4천억달러를 넘는 매머드은행도 출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 은행들의 이 같은 추세는 대형화를 통해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은행업은 89년이후의 경기둔화와 더불어 부동산대출이 대거 부실 채권화 함으로써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작년 4·4분기 중에는 전체은행의 20%가 적자를 보았을 정도다.
대형은행일수록 타격이 더 컸다. 총자산 10억달러이하인 「미니」 은행은 16%가 적자였으나 1백억달러이상인 은행은 31%가 적자였다.
지역별로는 중서부지역 은행의 총자산대비 수익률(작년4·4분기)이 0·99%인데 비해 동북부지역은행은 마이너스 0·51%를 나타냈다.
전반적으로 인건비 상승과 기계화투자확대가 수익성을 떨어뜨리고 있는 가운데 부동산경기침체가 특히 미북동부지역을 강타한 탓이다.
82년말 9백10억달러에 달했던 중남미국가에 대한 부실 채권은 그 동안 힘겨운 대손상각으로 지금은 5백억달러로 줄긴 했지만 뱅크아메리카 등 해당은행엔 여전히 무거운 「짐」이다.
여기다 단기실적을 중시하는 풍토와 그로 인한 금융기관간 무한경쟁은 「고위험·고수익」분야에 대출을 늘리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낳았다.
이 같은 여건악화를 견뎌내기 위해 주요은행들은 그 동안 감량경영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지난해 뉴잉글랜드은행은 전체인원의 35%인 5천6백명을 감축했으며 체이스맨해턴은행도 5천명을 줄였다. 시터·케미컬·매뉴팩처리스하노버은행도 1천∼2천명씩 감원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도 은행의 생존이 보장되지 않자 결국 초대형은행간의 합병 붐이 인 것이다. 합병을 통해 자산은 늘리면서 인력·점포·전산시설 등은 더욱 과감하게 줄인다는 생존전략이다.
미 은행들의 합병추세는 현재 미 의회에 제출돼있는 금융제도개혁법안과 무관치 않다. 은행의 증권·보험업허용과 주간영업규제철폐 등을 골자로 하는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예상되는 환경변화에 대비해 미리 덩치를 키우고 영업효율을 높이자는 뜻이 짙게 깔려있기 때문이다.

<심상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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