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서온 유대인들/이스라엘서도 이방인(지구촌화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경제사정 나빠져 대부분 실직상태/최근 이주부부 동반자살도
소련에서 핍박받던 유대인들이 소련정부의 출국제한 완화조치에 따라 큰 기대를 안고 건국 이스라엘로 대거 돌아왔으나 넉넉지 못한 이스라엘 경제사정으로 인해 실업 등 또 다른 시련을 겪고 있다.
이들 유대인들은 높은 실업률과 부족한 주택으로 주름진 이스라엘 사회속에 편입되면서 대부분이 직장도 구하지 못한채 심지어 텐트생활까지 해야하는 또다른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14일 이스라엘 주요 신문들은 소련에서 이주해온 한 중년부부의 동반자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4개월전 소련의 우즈베크로부터 이주해온 50대부부가 동반자살을 기도,남편이 부인을 살해한 후 자신도 가슴을 흉기로 찔러 자살했다는것.
이들 부부는 그동안 직업을 구하지 못해 남편은 소련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고 부인은 그대로 남겠다고 다투는 등 부부싸움 끝에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동반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련 이주민들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소련정부가 지난 89년 유대인의 출국제한조치를 완화한 이래 지금까지 약 25만명이 이스라엘로 이주해 왔다.
요즈음도 하루평균 5백50명이 몰려들고 있다. 인구 4백60만명인 이스라엘에 앞으로 5년동안 모두 1백만명 이상의 소 거주 유대인이 이주해올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은 북부 칼미엘.
인구 2만1천명의 이 도시에 3천1백명의 이주민이 정착,인구가 15%나 증가하면서 문제가 속출하고 있다.
주택임대료가 급등,2년전에는 방 2개짜리의 월임대료가 3백달러(22만원)였으나 현재는 2배나 오른 6백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정부는 임대보조금으로 매월 3백달러씩 지원해주고 있으나 직업이 없는 소련 이주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아파트를 얻지 못한 이주민들은 교외 공원에 텐트를 치고 임시거처를 마련해 살고 있다.
이스라엘정부는 인구증가라는 안보적인 차원에서 소련거주 유대인들의 이주를 반기고는 있으나 이들이 살 주택을 마련해주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있다.
이스라엘은 이주민들을 요르단강 서안,가자지구 등 점령지역에 정착시켜 이들 점령지역을 자국영토로 기정사실화하면서 인구증가를 통한 안보강화의 목적도 달성하는 다목적 이주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주택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이스라엘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월평균 3백가구의 공공주택과 7백가구 정도의 민간주택을 건설하고 있으나 이주민수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트레일러를 개조,이동식주택을 건설해 공급하는 등 각종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있으나 이나마도 부족해 트레일러에 2가구가 함께 사는 사태까지 빚어지고 있다.
집문제외 소련에서 이주해온 유대인을 괴롭히는 것은 직장문제다. 실업률이 10% 가까운 이스라엘에서 직업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기 때문이다.
소련이주민들은 학력이 매우 높아 40% 이상이 전문직종사 경력을 갖고 있는데 이러한 고학력자를 소화할 직장이 이스라엘 사회에는 많지 않아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이주민 의사들은 『일자리를 달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소련이주민문제는 이스라엘 정부의 재정난때문에 당장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같은 어려움을 덜기 위해 미국에 1백억달러의 재정지원을 요청해 놓고 있다. 이같은 사정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중동평화회담 개최협상에서 그동안의 강경한 입장을 누그러뜨리고 미국의 요구에 상당한 양보를 하게하는 한 원인이 되고있다.<김상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