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민 특파원 르포] 라마단 끝난 이라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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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이슬람 최대의 명절이자 종교의식인 라마단(단식월)이 이라크에서는 극도의 혼란 속에 막을 내리고 있다.

25일 정오 바그다드의 빈민 지역인 알사드르 시티에 있는 이맘 알리 모스크(아슬람 사원). 대부분이 이슬람 시아파인 이 지역 주민들은 어제까지 단식을 마치고 이날 시작한 '이드 알피트르'(단식을 끝내는 축제) 정오 예배를 위해 밝은 표정으로 사원에 들어섰다. 예배 전 반드시 하는 얼굴과 손발을 씻는 의식을 치르는 주민들은 사원 이맘(예배 인도자)의 안내방송에 일제히 얼굴을 붉혔다. 사원 이맘인 사디크 알알라크가 시아파의 성지인 나자프에서 전갈이 왔다며 "오늘 하루 더 단식을 하고 축제는 내일 시작해야 한다"고 통지한 때문이다.

주민들은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항의했다.

"오늘 아침을 먹고 낮시간에 담배도 피웠는데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

"어젯밤과 오늘 아침 방송에서 단식이 어제로 끝났다고 해놓고선 지금 와서 왜 이러느냐."

모스크 안팎은 주민들의 불평과 욕설로 금세 큰 혼란에 빠졌다. 단식의 시작과 끝을 정확히 지키는 것은 무슬림(이슬람 교도)에겐 상당히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주민들은 크게 당황한 것이다.

혼란은 전쟁이 끝난 이후 이라크의 이슬람 세력 지도자들이 서로 극심한 대립을 하면서 종파와 지역에 따라 단식의 시작과 끝을 제각기 다르게 선언하는 바람에 벌어졌다. 이라크 북부 수니파 지역은 23일 단식을 끝내고 24일 축제에 들어갔다. 그러나 중부의 수니파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지역과 때를 같이 해 24일을 마지막 단식일로 선언했다.

이라크의 일부 시아파도 수니파와 더불어 단식을 끝내고 25일 축제에 들어갔다. 바그다드 알사드르 시티에선 대부분의 주민이 25일 축제에 들어갔다. 나자프에 있는 시아파 지도자 무크타다 알사드르가 24일을 마지막 단식일로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그다드의 다른 시아파 주민들은 25일에도 단식을 했다. 나자프의 또 다른 시아파 지도자인 알리 시스타니가 "30일째인 25일까지 단식을 해서 한달을 채워야 한다"는 종교적 해석을 내렸다.

이 탓에 바그다드는 단식 마지막날을 놓고 주민들 간에 대혼란이 벌어졌다. "단식 계속하고 있어요, 아니면 끝냈어요"란 말이 인사말이 됐다. 바그다드 카라다 지역의 한 시아파 주민은 "사담 후세인 정권 당시에도 이 같은 종교적 해석에 관련된 혼란은 없었다"고 말했다.

따르는 종교 지도자가 다른 주민들은 모스크 앞에서 "우리의 지도자 알사드르가 단식을 끝내라 했으면 따르겠지만 왜 시스타니의 해석을 따르라고 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혼란 속에 축제는 흥은 깨져버렸다. 일부 아이들이 북을 들고 축제 분위기를 내지만 시내는 조용하다. 바그다드의 최대 놀이동산인 '마디나트 알아브'에도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축제를 즐기려는 몇몇 아이들만 보일 뿐 놀이기구는 빈 자리가 더 많다.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 처음 맞은 이드 알피트르 축제의 첫날(?)은 이렇게 대혼란 속에 끝났다. 석유와 가스가 부족해 축제를 즐길 여유도 없었다. 시내는 대규모 정전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더구나 라마단이 끝나고 축제가 시작되면 미군과 외국인에 대한 저항세력의 대규모 공격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아 주민들은 바깥 출입을 자제했다. 시내 곳곳의 거리에서는 미군과 이라크 경찰들이 탱크와 장갑차를 동원해 길을 막고 차량들을 검문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일단 25일 밤을 끝으로 이라크의 모든 지역과 이슬람 종파는 단식을 끝냈다. 이 순간 이라크 전역이 공식적으로는 축제다. 우여곡절 끝에 라마단은 끝났다. 초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그러나 멀리서 총성과 폭음이 빗줄기를 뚫고 호텔 방까지 전해온다. 이라크 전역이 평화의 종교인 이슬람의 종교 축제기간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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