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정국/정계변혁설 들먹거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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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통일전 지역감정 풀려면 대연합 불가피”/“내각제 다시 부상” 강한 추측/노­DJ 밀월 가능성도 대두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이 통일외교 및 남북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으로 전망되는 것과 때를 같이해 그러한 새 상황의 조성이 국내정치에 미칠 파장을 두고 여야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9월24일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민자당 대표,김대중 신민당 총재의 뉴욕 유엔총회 참석으로 절정을 이룰 「유엔정국」이 교착상태에 빠진 정치판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지만 그 강도에 대해서는 계파마다 다른 시각들이 교차하고 있다.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가입하고 노­김일성 남북정상회담이 본격 추진되는 상황이 오면 그에 대응해 국내정치는 필연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을 수 밖에 없다는게 유엔정국 전개에 따른 정치변혁론을 주장하는 이들의 견해이며 권력핵심쪽의 기대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지난 16일 노대통령과 김대중 총재의 청와대회담으로 재부상한 내각제 개헌문제가 두사람의 뉴욕회담에서 분명한 가닥이 잡힐 것이며 현 정치상황에 대한 김총재의 접근자세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정치권에 퍼져있다.
김총재가 최소한 수동적으로 정치변혁을 불가피하게 수용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것이라는 상황변화를 전제한 것으로 이들의 논리는 이렇다.
남북관계의 급진전은 통일에 대비한 우리측 내부의 정비를 우선적으로 제기할 것이며 그 첫째 과제가 남북통일에 앞서 영호남간의 동서통합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깊게 팬 동서간의 골을 메우고 그 응어리를 푸는 열쇠는 현재와 같은 정치구조로서는 불가능하다. 동서를 아우르는 현 정치권의 대통합,또는 대연합의 필요성이 필연적으로 제기되고 그에 따른 정치제도의 변혁이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논의다.
이에 따라 지역적 색깔이 너무 분명히 드러나는 소선거구를 대선거구로 바꾸면서 이를 바탕으로한 헌정체제의 변화까지도 내다보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대선거구에 대한 깊이 있는 얘기가 오갔으며 신민당 중진들이 이에 대해 예상외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밀약이든,이심전심의 교감이든 간에 그와 같은 물밑 감응을 반증한 것이라는 진단까지도 있다.
김영삼 대표가 대선거구 논의중단을 지시하고 제주휴가중 서둘러 대권후보자의 총선전 결정을 요구한 배경의 하나가 뉴욕회담 이후 조성될 정국이상기류를 의식,선제공격을 취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유엔행을 유보해온 김대표(YS)가 참석키로 방침을 굳힌 것은 노­DJ(김대중 총재)의 밀착을 차단할 필요성이 있다는 판단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김대표의 의향을 대변하는 황병태 의원은 『YS가 안갈 경우 노대통령과 DJ의 회담이 실제 내용과 상관없이 파문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YS의 참석은 내각제 부활론의 봉쇄등 국내정치에 미칠 파장을 방지하는데 우선 비중이 있다』고 설명할 정도다.
김대표측의 민감한 대응과는 반대로 김대표 반대쪽에 서있는 민자당내 민정·공화계는 유엔정국이 몰고올 정국변수에 기대감을 표시하고 있다.
박태준 최고위원은 이미 『남북문제등 앞으로 여러가지 변수가 있으며 김대중 총재가 서울에 있을때와 뉴욕에 있을때와 마음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해 유엔정국에 대한 관심도를 높여준 바 있다.
민정계의 한 중진의원은 『노대통령의 새로운 정국프로젝트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는 감을 갖고 있다』며 『그때까지는 일단 전략적 관망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종필 최고위원도 『남북문제와 국내정치문제는 병행추진돼야 한다』고 유엔정국전개를 의욕적으로 주시하는 느낌을 주고 있다. 김·박 두 최고위원이 모두 7월 중순 노대통령을 면담한 후 이같은 입장을 강하게 밝히고 있음도 유의해봄직한 대목이다.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은 호남대 비호남의 지역편차로 짜여진 낙후된 정치구조의 정비론을 확산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 대체적 전망이다.
남북한통일에 대비,지역감정 해소문제가 보다 실감나게 대두될 것이라는 예상속에 민자당내 민정·공화계는 지역감정에 기초한 「양김구도」의 현상타파쪽으로 연결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무엇보다 정치권의 관심은 유엔정국이 내각제문제에 어떤 변수를 제공할 것이냐와 권력구조 변경문제에 새로운 접근시도가 있을 것이냐에 쏠리고 있다.
우선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에 따라 통일추진에 부적절한 현행헌법의 영토조항(대한민국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의 개정 필요성등 다른 측면에서 개헌론이 제기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내각제문제가 「탄력」을 한층 가질 수 있다는 전망도 퍼져있다. 이 문제는 7월 임시국회에서 신민당에서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또한 노­DJ의 신협력관계의 진전수준과 본인의 강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개헌문제에 대한 김총재의 유연한 자세변화와 관련한 여러 관측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만약 김총재가 유엔에 동행함으로써 새 이미지가 형성된다면 그것이 전기가 될 수도 있다.
더욱이 김총재가 원하는 평양행등이 이뤄진다면 김총재도 새로운 남북관계를 바탕으로 재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노대통령이 이를 배려한다면 두사람의 관계는 밀월관계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이런 문제등에 대해 민주계는 강한 불만이다.
일부에서는 노대통령이 이런 상황변화를 전제로 개헌을 주장하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미리부터 쐐기를 박고 있다.
그러나 유엔정국이 현 정치상황에 별다른 파고를 몰고 오기 힘들다는 분석도 만만치않다.
기본적으로 정국변화의 주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김총재의 운신의 폭이 좁다는 것이다.
민주계핵심인 김덕룡 의원은 『DJ는 내각제반대를 너무 분명하게 밝혀 선회가 어려울 뿐 아니라 그의 대권구도의 전제는 현 대통령제에 의한 재도전이다』고 단언하고 있다.
지난 5월 한소 정상회담등 노대통령의 「외치」가 내정에 큰 영향을 주지못한 전례에 비춰 남북문제라고 하더라도 ▲정치일정의 「촉박성」 ▲유엔가입문제의 계속된 보도로 인한 충격도가 떨어짐으로 인해 정치권에 큰 파장을 주지못한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유엔가입에 따른 정국변수의 실체가 불투명한 상태다.
그러나 유엔가입후 남북관계에서 그 카드의 함량 여하에 따라 정말 정치변혁을 몰고올 결정적인 변화가 온다면 그것은 정치권의 모양에도 큰 충격을 주게될 것은 분명하다.<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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