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협,왜 뒷길만 택하는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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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베를린에 머물고 있던 전대협소속의 박성희양이 오늘 평양으로 떠난다고 한다.
범민족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전대협이 박양과 성용승군을 베를린에 파견했다는 발표를 듣고 이역만리를 찾아간 두 대학생의 부모들은 자녀의 얼굴도 보지 못한채 되돌아 온적이 있다.
전대협 스스로도 지난달 24일 두 학생이 평양으로 갈 계획이 없음을 공식으로 표명한 적이 있다.
허위단심으로 찾아간 부모를 만나기조차 거부하고 전대협이 스스로 밝힌 입장을 번복하면서까지 이들이 평양에 가야할 이유가 무엇인지,우선 그것이 궁금하기 짝이 없다.
남북청년학생 국토종단 대행진에 참가한다는게 이들의 방북목적이다. 이 행사라면 이미 89년부터 정부의 승인을 통한 절차를 밟는다면 허용할 수 있다는게 정부 방침이었고 지난 7월초 대통령의 밴쿠버선언에서도 공식 발표된 같은 맥락의 행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정부가 마련한 절차와 창구를 통하지 않고 굳이 「밀사」를 파견하는 형식을 취해야 하고 자신들의 밀입북만이 통일의 길을 여는 주체라고 생각하는가.
전대협이 통일의 주체이고 제2의 밀사파견이 통일의 고정관념을 깨뜨린다는 발상 자체가 시대착오적이고 과대망상임을 전대협 스스로가 이젠 깨달을 때가 되었다.
이미 우리가 여러차례 주장해 왔듯이 통일은 열기나 감정으로 다룰 감성의 테마가 아니라 현실에 입각한 이성과 단계적 과정을 거치는 냉철함으로 접근해야 함은 남과 북이 함께 인식하고 있다.
남과 북의 접근방식이 어느 한쪽의 흡수방식이 아닌,왕래와 신뢰회복을 통한 점진적 접근임을 통독이후 모두의 공감대로 받아들이는 오늘이다.
뿐만 아니라 전대협이라는 학생단체를 보는 시각마저 6월사태이후 크게 달라졌음을 자인해야 할 것이다. 주사파적 사상논리와 과격 폭력시위로 일관해온 이들 단체를 이성과 정의의 구현을 외치는 청순한 학생단체라고 보기 보다는 퇴색된 이데올로기에 경도된 극렬 소수단체라고 보는 시각이 일반화된 오늘이다.
이런 시점에서 밀입북 형식의 통일행진은 통일에의 길을 열기보다는 걸림돌이 될 것이고 통일의 주체라고 보기보다는 통일에의 접근을 어지럽히는 무모한 단체라고 보는 시각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
궁지로 몰리는 전대협의 위상정립을 위해서 임수경양에 이은 또다른 밀사를 파견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그러나 전대협이 진정한 대중성·대표성을 지향하는 전국대학생들의 단체라면 종래의 잘못된 운동방향을 솔직히 시인하고 시대와 국민적 호응을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노선변경을 했어야 옳다.
밀사파견이라는 충격요법으로 궁지에 몰린 전대협의 존재를 부각시키려 들지 말고 이성과 합리에 근거한 본연의 학생단체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주사파로 뭉친 급진단체가 어떤 충격적 방법으로 통일에 접근한다 해도 이젠 놀라지도 않고 일말의 감동도 주지 못한채 통일에 혼선을 가져오는 무모한 짓이라는 질책이 앞선다는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런 단체의 젊은이들을 통일의 주체라고 볼 국민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통일이란 무모한 몇몇 대학생들의 밀입북으로 성취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열기 보다는 냉정한 머리,그리고 통일을 감당하고 추진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힘이 있어야 함을 전대협은 이젠 인정할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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