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속에 채소밭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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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애기 엄마, 이것 좀 먹어보겠수.』
작년 이맘 때 길건너 2층집에 이사오신 할머니가 며칠전 소쿠리 가득 상추·쑥갓·깻잎등을 가지고 오셨다. 밭에서 방금 뜯어온 것이니 신선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할머니께 밭구경을 시켜달라며 따라나섰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채소를 가꿀만한 장소가 없었기에 더욱 궁금했다. 그런데 이럴 수가…….
할머니집 뒤쪽 20평 크기의 빈터에 작은 텃밭이 있지 않은가.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여 키우는 밭인가는 말씀을 안하셔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돌 한개 눈에 띄지 않게 정성스레 일궈 놓은 밭에는 배추·상추·쑥갓·깻잎은 물론 고추며 가지·토마토가 주렁주렁 가지마다 달려 있었고 보기에도 싱그러운 오이까지 땅위에 싱싱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 이렇게 훌륭한 채소밭을 일구셨느냐는 나의 감탄스런 물음에『자연은 뿌린대로 거두게 하지. 거짓이 없어』하시며 각종 야채들을 잘 자란 대견한 자식보 듯 하시는 할아버지. 김치는 밭에서 뽑은, 화학비료를 일절 쓰지 않은 무공해 배추로만 담가 장수하신다는 할머니. 순간 밭아닌 척박한 빈터를 일구시느라 얼마나 많은 정성과 땀을 쏟으셨을까 생각하니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그리고 아직도 편하게만 살려 했던 나 자신의 생활태도가 얼마나 안이했던가에 부끄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었다.
전화한통화면 배추며 콩나물, 심지어 파 한뿌리까지 배달해주는 요즘 주부들의 평안함과 흙을 갈아 씨뿌리고 물을 주어 땀흘린 결실을 거두는 만족함을 어찌 비교할 수 있을까.
부끄러운 마음에 말없이 돌아서는 나를 부른 할머니는 한 아름의 토마토를 안겨주시며 자연공부에 도움이 될테니 아이들도 데리고 놀러오라시는 것이었다. 그 따뜻한 마음씀에 눈물까지 찔끔 나왔다.
그래, 나도 한번 해보자. 나무상자에 흙을 가득 담아 상추씨라도 뿌려보자. 그리하여 나의 정성의 결실을 식탁에 올리리라. 식탁 가득 신선함을 채워보리라. 나는 자신에게 되뇌며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 골목을 들어서고 있었다.
아이들에게도 이 결실을 전해 함께 씨뿌리고 가꾸어 결실의 기쁨을 맛보리라.

<서울은평구불광1동 8의255 삼협빌라1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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