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만화 '땡땡의 모험' 시리즈 24권 국내 완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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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만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르제의 대표작'땡땡의 모험'(솔출판사.전 24권.각권 8천원)시리즈가 국내에 완간됐다. 1929년 벨기에 잡지 '소년 20세기'에 처음 발표된 후 70년대 중반까지 반세기 가까이 연재된 이 만화는 그동안 60여개국에 번역돼 3억부 이상 팔린 유럽 만화의 고전이다. 국내에도 80년대 중반 만화잡지, 90년대 초 TV 애니메이션으로 일부 소개되기는 했지만 시리즈 전체가 번역돼 나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주인공 '땡땡'은 소년 탐방기자다. 당시 서구에는 금단의 땅이었던 사회주의 소련을 시작으로 미국.아프리카.남미.이집트.중국.티베트 등 동양과 서양, 극지방과 사막, 심지어 현실에 없는 상상의 왕국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를 무대로 범죄조직의 음모에 맞서는 모험을 펼친다.

작가 에르제는 땡땡의 발걸음을 따라 이 시리즈를 마치 '20세기 백과사전'처럼 만들어냈다. 이집트 고대문명이나 티베트의 라마교 같은 각지의 신비로운 문화는 물론이고 일본 제국주의의 중국 침략, 석유를 둘러싼 패권다툼, 서구열강의 식민지에서 해방된 아프리카 등 그 무렵 세계사의 주요 흐름을 정교하게 그렸다.

과학적인 상상력 면에서도 '땡땡의 모험'은 탁월한 작품이다. 에르제가 '달 탐험계획'(1953년)과 '달나라에 간 땡땡'(54년)을 그린 것은 69년 미국 우주인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첫발을 내딛기 10여년 전의 일이다. 시리즈 곳곳에 등장하는 신발명품과 다양한 기종의 자동차.선박.잠수함.오토바이 등 각종 탈 것도 세밀한 묘사에 원체 공을 들여 그 자체로 볼 만한 구경거리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화려한 모험의 주인공인 땡땡이 놀랄 정도로 특징이 없다는 점이다. 우선 외모부터 그렇다. 동그란 얼굴에 점 두 개를 달랑 찍어놓은 눈매가 미국 만화의 근육질 영웅처럼 강한 인상이 아니다. 정확한 나이.고향.가족같은 사생활을 짐작할 단서도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땡땡이라는 인물보다는 세계를 무대로 한 모험 자체가 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셈이다.

물론 땡땡에게 동반자가 없다면 섭섭하다. 사람 못지 않은 애완견 밀루를 비롯해 위스키와 파이프 담배 없이는 못 사는 아독 선장, 가는 귀가 먹어 곧잘 엉뚱한 소리를 하는 과학자 해바라기 박사, 어처구니 없는 실수만 거듭하는 무능한 경찰 뒤퐁과 뒤뽕은 만화 곳곳에서 웃음을 자아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등장인물 가운데 유일한 실존인물인 창총젠은 중국인 유학생 출신으로 작가 에르제와 평생에 걸쳐 우정을 나눈 친구다. 그런 만남이 일본의 중국침략을 배경으로 한 '푸른 연꽃'(36년)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푸른 연꽃'과 함께 시리즈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티베트에 간 땡땡'(60년) 역시 둘의 우정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에르제'는 벨기에 만화가 조르주 레미(1907~83)의 필명이다. 그의 생전에 완성된 시리즈는 모두 23권으로 마지막 작품인 '땡땡과 알파아트'는 완성하지 못했다. 국내에서는 '…알파아트' 대신에 그의 원작을 토대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스틸을 다시 만화책으로 꾸민 '땡땡과 상어호수'가 더해졌다.

등장인물의 시점에서 그려낸 화면에 익숙한 요즘 독자들에게는 '땡땡의 모험'이 낯설지도 모른다. 이 만화는 소설로 치면 객관적인 3인칭 서술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정교한 사전 대본을 따라 그려냈다는 화면의 흐름은 매우 자연스럽지만 말풍선마다 빼곡한 문장도 어린이 독자에게는 상당한 '수고'를 요한다. 하긴 심심풀이로 넘겨볼 정도였다면 '고전'이라는 수사가 붙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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