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없는 무더기 공소 취하/박보균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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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검찰이 25일 보안법위반·폭행혐의 등으로 재판에 계류중인 야당의원 4명과 5공청산문제와 관련된 구 민정당인사 2명을 공소취소한 것은 검사장출신 박희태 민자당 대변인 얘기대로 『전례없는 일』이다.
박대변인은 『형이 확정된 뒤 사면·복권을 하는 방법도 있는데 이같은 무더기 공소취소결정은 사법사상 처음으로 나도 깜짝 놀랐다』며 『정치권 화합을 위한 긍정적 신호』라고 평가했다.
국회운영위원장 자격으로 검찰에 관용조치를 바라는 요망서를 보냈던 김종호 민자 총무는 『13대국회도 끝나가는 마당에 임기중에 있었던 불행한 일을 모양좋게 매듭짓는 차원에서 추진했던 것』이라며 만족해했다.
정치권은 이번 조치로 지난 16일 노태우 대통령·김대중 신민당 총재회담을 계기로 조성된 여야 밀월관계가 한단계 진전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파격적 조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나 법집행의 형평성 측면에서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고 있다.
24일 검찰에 공문을 보내고 하루만에 이 조치가 나올때까지 여야지도부를 제외한 의원들은 이를 몰랐고 국회의장조차 사후에 구체적인 보고를 받았을 정도로 극비리에 추진되었다. 『여야의원들의 관용 소망』을 검찰에 전달했다고 하나 국회의 당당한 논의와 최소한의 동의절차를 무시한 채 이루어졌다.
국회의 공식의결로서 고발한 5공청문회관련 증인까지도 풀어달라고 할 때는 적어도 형식적인 의견수렴 절차라도 거쳐야 했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검찰이 재판을 포기한 이유로 제시했던 김총무의 요망서 제출과정에 석연치 않은 시선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검찰은 정치권의 요청을 적극 수용했다고 하나 스스로 법집행의 불공정을 시인한 꼴이 됐다. 보안법이 적용된 문동환 의원(신민)의 경우를 들어 『공안통치가 없는 것을 재확인했다』고 민자당쪽에서 해석했지만 기소자체가 무리였음을 뒤늦게 인정했다는 구설수가 검찰주변에서 들린다고 한다.
이번에 박종문 전 농림수산장관의 경우 의도적인 재판기피의 시간끌기로 선고예정 하루전에 혜택을 받았지만 청문회석상에서 고집스럽게 자기주장을 펴고 재판에 응했던 김만기 전 사회정화위원장은 유죄선고를 받아 대조를 이루고 있다.
관례와 절차를 생략한 이번 조치는 야당과의 밀월을 꾸려나가려는 여권의 고도의 정치적 판단,야당의 요구와 화답,그리고 정치권의 요청에 맥없이 원칙을 포기한 검찰이 내놓은 문제많은 합작품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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