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선 기자|유명 탤런트 동원 알맹이 없는 개그「잔재미」만 좇는 여름 연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한여름 성수기를 맞은 연극무대가 흥행을 겨냥한 상업성에 치우쳐 순수예술로서의 작품성을 잃어가고 있다.
대부분 극단들이 대학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까지 방학에 들어간 때에 맞춰 관객용 쉽게 끌 수 있는 작품, 즉「얕은 흥미」만을 강조하는 작품에 매달리고 있다.
대표적 예가 뮤지컬형식과 인기탤런트 출연작품 등이다. 이미 흥행에 성공적인 롯데 예술극장의『웨스트사이드스토리』와 극단 대중의『넌센스』에 이어 뮤지컬형식인『아가씨와 건달들』『철부지들』등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또 탤런트 최화정이 출연해 히트했던『리타 길들이기』에 이어 역시 탤런트 겸 MC인 주희가 출연하는『돈아 돈아 돈아 Ⅱ』와 하희라가 출연하는『난 영화배우가 되고싶어』가 무대화되고 있다.
이 같은 공연이 잇따르고 있는 것은 앞선 공연들이 확인해준 성공가능성 때문이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두달 남짓 공연에 이미 관객 4만 돌파라는 기록을 세워 8월말까지로 예정된 기간을 연장할 계획이다.『넌센스』역시 관객이 이어져 며칠 전에 예약해야 볼 수 있으며, 이미 공연 횟수와 기간을 연장했다. 더욱 획기적인 성공사례는 소극장 공연인『리타 길들이기』가. 3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것. 샘터파랑새 극장에서 성공한 뒤 입장료를 올려 현대문화센터에서 재 공연했는데 연일 관객이 몰리는 등 대성공을 이뤘다.
이 같은 성공인파는 분명 관객저변확대라는 면에서 연극계에 기여하고 있다.「연극 영화의 해」라는 호조건과 맞물려 연극인들의 사기를 복 돋워 주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 작품이 짙은 감동을 주는·극적 재미나『한바탕 웃고 끝나는』 일과성 재미뿐이라는 점이다. 순수예술로서 연극의 본래기능인 카타르시스나 교훈적 메시지의 전달이 없다. 따라서 극장을 나서는 순간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시간 때우기용」공연으로 흐르기 쉽다.
최근 연극계 전반에 퍼진 이 같은 경향은 일부 실험적 작품과 몇몇 극단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연이 코미디일색인데서 찾아볼 수 있다. 그 결과 중·고등학생 등 청소년관객은 눈에 띄게 늘고 있으나, 정작 고정 연극 팬이랄 수 있는 성인관객들 사이에서는『볼만한 작품이 없다』는 불평이 늘고 있다.
특히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인기탤런트 출연작품『리타 길들이기』에서 보여주듯 그 인기는 가위 폭발적일 정도며, 따라서「관객확보=성공」이 거의 보장되는 셈이다 이는 출연배우의 입장에서 볼 때, 연기훈련에 매우 효과적인 연극무대경험과 함께 팬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바람직한 면도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작품들이「탤런트의 인기에 편승해 쉽게 성공해보자」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극적 재미나 교훈적 메시지는 무시한 채 비 현실적인 내용에 여배우의 미모나 개그 따위의 말재주에 의존하고 있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돈아 돈아 돈아』시리즈다. 극단 신화가 창단 기념으로 공연했던 Ⅰ편은 스포츠지 연재 만화를 무대화한 작품으로 대성공을 거뒀다. 내용은 돈과 섹스에 얽매여 여자들에게 밀려다니는 철부지 남자(달호) 얘기다. 흥미를 자극하는 소재를 코믹하게 그리는 것만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극단측은 후속편을 다시 무대에 울렸다. 만화가 강철수씨가 별도로 대본을 썼지만 내용은 전편과 별로 다르지 않다.
한편 이 같은 공연관람 시 유의할 점은 주인공인 인기 탤런트가 방송스케줄 때문에 출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돈아 돈아 돈아 Ⅱ』의 경우 매일 오후 4시30분과 7시30분 두 차례씩 공연되는데 주희가 출연하는 것도·월·수·목 4시30과 토·일요일 공연이다.『난 영화배우가 되고 싶어』에서 하희라도 수·토요일엔 출연하지 못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