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난로에 손을 대면 화상 입는 상식사회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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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사진) 법무부 장관의 경제관은 아주 뚜렷하다. 최근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경제는 경제논리에 맡겨야 합니다. 정치적 흥정으로 경제논리를 헝클어뜨리는 것엔 질색입니다."

지난해 12월 27일 열린우리당과의 당정회의에서도 그랬다. 민병두 의원이 입법을 추진했던 전.월세 인상률 연 5% 이내 제한에 손사래를 쳤다.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므로 위헌 가능성이 있다"고 못박았다.

그런 김 장관이 1일 기업인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섰다. 대한상공회의소 주최 조찬간담회에서다. 기업인 2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주제강연 제목은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위한 법무정책 방향'. 강연 첫머리에서부터 김 장관은 기업인들에 대한 친근감부터 표시했다.

"검찰.청렴위원회.법무부 등에 있을 때 저도 최고경영자(CEO)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만큼 여러분이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김 장관은 '정부의 신뢰'를 유난히 강조했다.

그는 "훌륭한 정부는 막강한 무기와 식량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백성의 신뢰를 으뜸으로 삼는다"고 말했다. "국민이 믿지 않으면 나라가 존립할 수 없다"고도 했다. 부연 설명으로 논어의 예를 들었다. 제자 자공(子貢)이 스승 공자에게 물었다. "정치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자 왈, "식량을 풍족히 갖추고, 군비를 충족히 하며, 백성을 믿게 하는 것이다." 제자가 다시 물었다. "부득이 셋 중 하나를 빼야 한다면?" 그러자 스승은 "무기"라고 답했다. "또 하나 더 뺀다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식량"이라고 했다.

이 일화를 들면서 김 장관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자료를 인용, "우리 정부는 10점 만점에 3점이며 정부 요인들은 반성해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참석한 윤장혁 화일전자 대표는 "기업의 글로벌 경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단이 정부의 신뢰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 장관은 법치주의를 바탕으로 한 자유 시장경제 지론을 피력했다. 특히 이 논리를 노사관계에 적용했다. 그는 "폭력조직이 자동차 부품 회사를 운영하면서 부품을 판다면 어떻게 되겠나"고 반문했다.

그래서 이날 김 장관은 노사관계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는 아직까지 목소리가 크면 이기고, 불법파업이라도 해야 월급을 올려 주는 잘못된 관행이 불식되지 않고 있다"며 "악습을 정리할 때가 왔다"고 주장했다.

김 장관은 "법을 어기는 것이 다반사가 되고 있어 '원칙의 그물 짜기' 운동을 하고 있다"며 "불법적인 것에는 이익을 주면 안 된다"는 소신을 밝혔다. 또 "뜨거운 난로에 손을 대면 화상을 입어야 하는 게 상식인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장관은 검찰 재직 기간에는 전두환 비자금 사건 등 거의 기업 수사만을 전담, 기업인들을 벌벌 떨게 했다. 이러한 이력에 비춰볼 때 적지 않은 사람이 그의 친기업적인 성향에 의외라는 반응을 보여 왔다.

이날 재계 인사들은 김 장관의 강연에 "구구절절 옳은 말"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윤장혁 대표는 "경제 지식이 해박할 뿐 아니라 어떻게 해야 나라 살림살이가 나아질 수 있는지 해법을 갖고 있는 분"이라고 김 장관을 평가했다. 또 "법무장관이라기보다는 경제 관련 부처 장관 같았다"고 덧붙였다.

정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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