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태만 공무원에 1년간 일용직 업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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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리도 공무원 신분보장 규정만 믿고 무능하고 태만한 공무원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왔습니다. 철밥통 깨는 방법 좀 가르쳐 주세요."

울산시와 울산남구청은 업무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5~6급 공무원 4명, 5~7급 9명을 솎아내 각각 지난달 23일 신설한 시정지원단 등에 발령을 냈다. 이들에게 1년간 교통량 조사와 쓰레기 청소 등 일용직들이 하는 단순 노무작업을 시키면서 개선되지 않으면 퇴직을 유도하기로 했다.

현행 지방공무원법 60조엔 '범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거나 파면 등의 사유 외에는 강제로 면직시킬 수 없다'는 이른바 '공무원 신분보장 규정'이 있다. 이를 깨기 위한 울산시의 '인사혁명'이 본지(1월 24일자 5면)를 통해 알려지자 전국적으로 "공무원도 더 이상 '철밥통'일 수 없다"는 파장이 일어났다.

울산시의 인사실험을 "한 수 배우겠다"며 자문과 자료를 요청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줄을 잇고 있다.

◆"우리도 본받겠다"=1일 울산시에 따르면 광주광역시와 경기.경남.전남도 등 4개 광역자치단체를 비롯해 서울 서대문구, 경기도 의왕.남양주시, 경남 산청.하동.합천군, 전남 구례군, 강원도 홍천군, 광주시 남구청 등 13개 자치단체에서 울산시로부터 관련 자료를 받아갔다.

이들 지자체의 인사담당자들은 "그동안 인사철마다 업무능력이 크게 떨어진 직원을 간부들이 서로 기피하는 바람에 속앓이를 해왔다"며 "도지사.시장.군수의 긴급지시에 따라 우리도 7월 정기인사 때 이런 인사 시스템을 도입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울산시에 밝혔다.

최병권 울산시 자치행정국장은 "자문을 해 온 지자체들은 새로운 인사제도의 도입 배경과 향후 관리방안, 공무원들의 반응 등을 꼼꼼히 챙겼다"고 말했다.

◆긴장하는 공직사회=시정지원단에 배치된 4명의 울산시 공무원들은 "직위에 맞는 업무를 달라"며 한동안 반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동안 스스로 뭘 했는지 돌아보라"는 실.국장들의 충고에 "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면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분발을 다짐하고 있다고 울산시 관계자가 전했다.

이들과 함께 근무했던 동료 공무원 김모(46)씨도 "직책에 걸맞은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나 역시 낙오되지 않을까 두렵다"며 "요즘 근무시간 중 인터넷 게임이나 잡담으로 시간을 떼우는 모습도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박맹우 울산시장은 "시장인 내가 사무실을 찾아도 컴퓨터 게임을 멈추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며 "일하는 동료에게 피해를 주는 직원을 그대로 두고서는 행정혁신을 이룰 수 없고, 시민에 대한 도리도 아니라고 생각해 이 제도를 시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울산=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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