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비겁한 경제관료들의 무책임한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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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제 정부가 내놓은 이른바 '주택시장 안정과 주거복지 향상을 위한 공공부문 역할 강화방안'을 보면, 이 나라의 경제관료들에게 경제정책을 계속 맡겨도 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이미 실패로 판명난 부동산 정책을 바로잡기는커녕 아예 망가뜨리기로 작정을 한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근본 원인은 강남 부동산을 잡겠다고 무차별적인 규제를 남발한 끝에 시장의 수급기능을 마비시킨 데 있다. 경제전문가를 자처하는 경제부처 관료들은 대통령의 잘못된 진단을 좇아 엉뚱한 처방만 잔뜩 내놨다. 우리는 당시나 지금이나 경제관료들이 부동산 정책의 실패 원인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판단한다. 대한민국의 최고 엘리트라는 경제관료들이 현실경제가 작동하는 최소한의 원리를 몰랐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다만 틀렸다고 말할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요구에 마지못해 실무적으로 뒷받침했을 뿐이라고 변명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몇몇 경제관료의 보신과 출세를 위해 더 이상 이 나라의 정책이 왜곡되고, 경제시스템이 훼손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정부가 그간에 내놓은 부동산 정책의 내용과 결말을 한번 보라.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끼우는 바람에 빚어진 부작용을 틀어막는다고 졸속으로 땜질과 덧칠을 거듭해 왔다. 세금폭탄을 때리고, 반시장적인 분양가 상한제와 분양원가 공개를 밀어붙이고, 급기야 주택시장을 정부가 아예 대신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이렇게 시장을 무시한 정부 주도의 주택정책이 과연 얼마나 갈 수 있겠는가. 혹여 자신들이 장.차관 자리를 꿰차고 있는 동안만 모면하면 된다는 발상은 아닌지 궁금하다.

정부가 서민 주거를 책임지겠다면 떳떳하게 적자국채를 발행해 재원을 마련할 일이지, 군색하게 연.기금 돈을 끌어들여 세금으로 돌려막는 꼼수를 쓰지는 말아야 한다. 그저 대통령의 말이라면 군말 없이 따르는 게 상책이라면 차라리 경제전문가라는 간판을 떼라. 그리고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