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보다 나눔·섬김이 중요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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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삶터이고 삶터가 곧 학교'.

사교육 열풍 속에 한갖진 산골에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일종의 대안학교가 내년 4월 10년 간의 준비 끝에 상설학교로 문을 연다.

충북 영동군 상촌면 대해리 민주지산 자락에 위치한 자유학교 '물꼬'. 지식의 확장보다 숙식을 같이 하며 연극이나 농삿일 등 다양한 교육적 자극을 통해 건실한 생활인을 길러내는 게 이 학교의 교육 목적이다.

지난 23일 오후 열린 입학설명회엔 서울.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온 70명의 학부모와 예비학생들이 상설학교의 운영 방향을 청취했다. 산간벽지인데다 수세식화장실도 갖추지 못한 열악한 시설이지만 모두 입학 의사를 밝혔다.

1996년 해발 4백m의 폐교된 상촌초등학교 대해분교에 터를 잡고 그동안 캠프 형식의 계절학교를 수십차례 운영해온 물꼬는 대안학교다. 하지만 물꼬의 지향점은 기존 대안학교와 다르다. 생태공동체 마을 건설이라는 궁극적 꿈도 그렇지만 완전 무상 교육을 실현하겠다는 점도 차별적이다. 또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대안학교로는 지방에서 처음 생긴 것으로, 도회지와 동떨어진 환경도 다르다. 정규 학력도 인정되지 않는 임의 교육시설이다.

교육이념은 '스스로를 살려 나누고 섬기는 소박한 삶, 그리고 광활한 우주로 솟구쳐 오르는 나'를 추구하는 것. 이를 위해 물꼬는 종래 계절학교보다 더 체계적인 운영 프로그램으로 농사 등 다양한 체험활동 속에서 땀의 가치는 물론 더불어 사는 지혜와 인생관을 일깨워주고 형성하도록 할 방침이다. 학년별 교과 과정 외에 바느질 등 생활에 밀접한 25가지 정도의 기능교육도 할 계획이다.

학생 모두가 기숙생활을 하며 교육은 두레일꾼(교사)과 품앗이일꾼(자원봉사자)이 맡게 된다. 아이들이 먹을 양식과 학교 운영비 마련을 위해 농사를 짓는 품앗이 일꾼은 이미 1백여명 정도가 확보돼 있다.

물꼬의 공동체학교 건설 꿈은 94년으로 거슬러간다. 89년부터 서울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교실을 운영하던 교장 옥영경(玉永京.36.여)씨가 수십 차례 쌓아온 계절학교 운영 노하우를 토대로 뜻을 같이하는 교사들과 모임을 결성하고 10년 뒤 개교하기로 목표를 세운 것.

학교 설립을 주도해온 그는 전국을 답사한 끝에 96년 학교 부지를 정하고 해마다 서울과 이곳에서 15차례씩 계절학교를 운영해왔다.

대학을 4군데 옮겨다니면서 국문학.신학.교육학을 전공한 玉씨는 팔방미인으로 통한다. 그가 공동체 학교 설립을 꿈꾼 것은 한 때 열심이었던 학생운동 과정에서 올바른 인간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 외국의 대안학교 모델을 찾아 2년간 해외탐방을 하기도 했다.

물꼬는 농장 운영과 후원금만으로 꾸려갈 방침이다. 6명의 교사들에겐 매월 10만원씩의 용돈만 지급된다. 玉씨는 "교과서를 존중하되 삶과 연관해 재해석하고 일.예술과 영성 교육을 골고루 실시할 계획"이라며 "독자적인 공동체학교로 운영해 대안학교의 모델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동=안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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