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개미인가 베짱이인가/유승삼(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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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최근 크레송 프랑스총리의 일본에대한 가시돋친 발언으로 비롯된 두나라간의 설전이 흥미롭다. 국내 신문에도 보도된대로 크레송 총리는 『일본인은 개미처럼 일만 하고 작은 아파트에 살며 통근시간은 2시간이나 걸리고 물가는 외국보다 비싸다』고 일본을 깎아내렸다. 그러면서 『우리 프랑스인은 사회보장과 바캉스를 즐기고 지금까지처럼 인간다운 생활을 계속하기 바란다』는 사회체제의 상대적 우월론을 폈다.
이에 대한 일본측의 공식적인 반응은 사카모토 관방장관에 의한 『베짱이보다 개미가 낫다는 것은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라는 비교적 점잖은 것이었지만 극우단체는 크레송의 허수아비를 참수하는데까지 이르렀다.
두 나라간의 이러한 입씨름은 우선은 흥미거리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결코 흥미롭게 즐기기만해도 좋은 그런 내용의 것은 아니다. 일본이 개미고,프랑스가 베짱이라면 우리는 무엇인가.
개미사회가 바람직하든 베짱이 사회가 바람직하든간에 우리에게 과연 그런 목표나마 분명히 설정되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굳이 개미냐,베짱이냐로 구분하자면 우리 사회는 현재로선 개미쪽에 속할 것이다. 이는 우리들 스스로가 우리 사회를 분석해 보아도 그렇고 세계가 우리를 보는 눈 역시 그렇다.
70년대 후반부터 우리의 경제성장이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미국과 유럽쪽의 우리에 대한 시각은 한국이 「작은 일본」,크레송의 표현법을 따르자면 「작은 개미」로 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노대통령도 지난번 방미기간중 한 연설에서 우리는 결코 「작은 일본」이 되지는 않겠다고 강조해야만 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이는 우리나라에 대한 지나친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기위한 외교적 수사였을뿐 실제로 우리들이 갈수록 일본을 닮아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얼마전 수학여행으로 우리나라에온 한 일본고교생이 TV인터뷰에서 『한국은 뜻밖에도 조금도 낯설지가 않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일본에서 머리가 짧아지기 시작하면 어느새 우리들의 머리도 짧아진다. 여성들의 옷차림이나 화장품은 길어도 6개월이면 일본과 똑같아진다고 한다.
어디 생활상만 그런가. 경제활동의 내용이 그렇고,정치내용이 바로 그렇다. 닮고 닮다못해 정당의 이름마저도 닮아가는 판이다.
일본은 누가 뭐래도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경제대국이다. 개발도상국인 우리로서는 어떻게 하든지 그들을 따라잡기에 노력해야 하고 그런 과정에서 모방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어쩔 수 없다는 측면이 있다. 또 어차피 우리나라의 경제개발은 미일의 자본에 의존,주로 일본을 모델로 시작된 것이어서 일본의 영향을 단기간안에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역시 한국은 한국이지,일본은 아니라면 우리들은 이쯤에서 우리들 나름대로의 체제모델을 진지하게 모색할 필요가 있다. 우리들이 지금 일본사회를 비판할만한 형편에 있지는 않으나 서구의 시각에서가 아니라 우리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일본의 국민생활상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크레송의 지적이 한 나라의 총리로서는 거칠고 무례하며 오만한 것만은 틀림없지만 그 지적 내용은 틀리지는 않는다.
일본인 스로가 말하듯 닭장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하루에 서너시간을 만원전철에 시달리고 그래서 번돈은 사회보장제도가 취약해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내일의 자기보장을 위해 저축을 해야만 하는 것이 일본인의 생활상임을 우리들은 더 잘알고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과의 경제적 격차는 20∼30년이 된다고들 말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추세대로 갈 경우 주먹구구식으로 계산해 20∼30년후의 우리 사회 모습이 바로 현재의 일본모습이 되는 셈인데 과연 이를 우리들이 목표삼아도 좋을 것인가.
일부 사람들은 경제력의 증강이 저절로 복지사회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사로잡혀 있다. 물론 경제력의 향상없는 복지사회의 건설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경제력의 향상이 그대로 복지사회의 건설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바로 일본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오늘날의 서구복지국가건설이 충분한 경제력의 바탕위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영국이 그랬고,스웨덴이 그랬다. 경제력에 앞서 국가경제의 목표를 먼저 설정했고 그것으로서 사회적 갈등을 완화시켜 경제를 발전시키는 우리와는 역의 경로를 택했던 것이다.
물론 서구의 복지사회 모델이 우리에게도 그대로 바람직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우리의 역사적·문화적·사회적조건에 맞는 사회 모델은 따로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됐든 분명한 것은 하루빨리 우리사회의 미래상이 정립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후발한 나라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강점은 앞선 나라들의 잘못된 길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는데 있다. 그런 이상 아무리 미래상도 머리속에 그림이 없이 하나에서 열까지 그저 일본을 모방하기에 급급한 우리의 자세는 재검토되어야 한다. 우리는 앞으로도 더 일본인이상으로 개미처럼 일해야할 형편인 것은 분명하지만 일본사회가 미래상이어서는 안된다는 것 역시 분명해 보인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 대한 말이기도 한 크레송의 지적은 되씹어볼만한 가치가 있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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