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장 「봉」만은 아니다(자본시장 개방되면…: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일부 보험사 적응 못한채 철수/정공법·지구력이 외국사 강점
한국의 금융시장이 거저 떨어지는 「봉」은 아니다. 다시 말해 외국 금융기관들이 우리 나라에서 좋은 실적을 올렸다면 거기엔 반드시 다 알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지,우리가 듣도 보도 못한 신기한 금융기법으로 우리 금융시장을 휩쓰는 것은 아니다.
지난 89년 시티은행이 슈퍼신탁이라는 금융상품을 치고 나왔을때 국내금융기관이나 언론들은 다들 일단 경악의 표정부터 지었다.
그러나 2년에 연 30%이상의 금리를 붙인 이 금융상품은 알고보면 88년말에 단행된 정부의 금리자율화 조치때 2년이상의 여·수신금리가 함께 자율화됐다는 점을 이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2년이상의 자금을 조달해 2년이상의 대출로 운용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그때 함께 만들었던 것이 2년이상 최고 2억원까지의 주택자금 대출이었는데 아직도 이를 본뜨려는 국내 금융기관은 없어요.』
이같은 시티은행이 지난 67년 한국에 상륙하고나서 19년만에야 비로소 소매금융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금방 떠올리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지난 87년에 들어온 외국 생보사,89년에 영업을 시작한 합작 생보사들은 아직까지 재미를 보기는 커녕 모두들 어려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처음엔 사업 6차연도에 수지를 맞추고 9차연도에 누적적자를 메운다는 계획이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그 계획을 일단 1년씩 뒤로 미루었습니다.』
이같은 삼신올스테이트측의 설명은 한국의 보험시장이 그리 만만한 시장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보장성 상품보다 저축성 상품이 주류이고 보험모집인들의 장사수완이 보험사 영업의 결정적인 변수라는 등의 이유로 비록 외국 보험사들이 우리더러 『진정한 의미의 보험시장이 아니다』라고 혹평을 하지만,우리의 「토착적」인 보험시장에 아직 그들이 적응을 못하고 있는 것은 그들 자신의 문제다.
89년 고려CM의 미국측 파트너인 CM사가 투자지분을 회수해간 것이나 90년 1월 미국의 아플락사가 철수한 것 등이 다 그같은 예다.
그렇다고 외국보험사들이 만만히 보아넘길 대상이라는 이야기는 또 아니다.
처음부터 그들이 보험사로서 보다는 기관투자가로서의 장래를 보고 한국의 문을 두드렸다는 것은 다 짐작하던 사실이었고,실제로 보험영업보다는 투자수익위주로 가겠다는 것이 외국보험사들의 공통적인 전략이기도 하다. 더구나 「시티은행의 소매금융 19년」에서 보듯 그들의 「지구력」이야말로 우리에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자본시장의 개방을 앞두고 외국의 기관투자가들을 「우리의 틀」로서만 보려는 경향이 없지 않다.
『한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든 외국의 자본이 우르르 들어왔다 나가는 경우는 없습니다. 기관투자가들은 국가별로 위험을 분산시킨다는 입장에서 투자를 나누어 놓지 한국에서 한탕,싱가포르에서 한탕 하는 식은 없습니다.
결국 내년에 시장이 열리면 런던·동경·뉴욕·싱가포르 등의 국제금융시장 동향이 대한 투자의 주요한 변수가 될 것입니다.』(독일계 모건 그렌펠 증권사 김규연 서울 사무소장)
국제적인 신용이 있는 기관투자가인 만큼 투자의 「정공법」을 구사할 수밖에 없지,한번에 거액을 챙기는 식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서로가 곤란하다는 이야기다.<김수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