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시인 천상병·걸레 스님 중광-「기담시집」잇달아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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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천상병./ 「네놈이 걸레 스님이냐, 옷 한번 잘 입었다. 너덜너덜.」/중광./「굴뚝에서 금방 기어 나온 놈 같군./똥 묻은 개가 재 묻은 개를 나무란다더니.」/…/중광./「태평양 고기들은 벌써 3차 대전을 끝냈어.」/천상병./「만일 천국에 가는데 노자가 든다면 나는 어떻게 하나,」/중광./「염려하지 마라./천당 극락 아파트 열쇠를 몇 개 가지고 있으니 하나 줄께.」/천상병./「네놈이 정말 큰 도적놈이구나.」/중광./「가갸거겨 가갸거겨 가갸거겨」/천상병./「올챙이가 개구리 흉내제법 내는군.」』
떠돌이 시인 천상병씨(61)와 걸레 중광스님(56)이 최근 잇따라 작품집을 펴냈다. 중광의 위시 『우문우답』일부에서도 드러나듯 기이한 의상과 언행, 세삼 어느 제도에도 편입되지 않으려는 자유혼으로 천씨와 중광은 우리시대 최후의 자유인, 혹은 기인으로 으뜸버금 꼽힌다. 이 둘은 재작년 말 또 다른 기인 소설가 이외수씨와 3인 공동으로 시화집 『도적놈 셋이서』를 출간, 기인들로서 「의기투합」함으로써 화제를 뿌리기도 했었다.
천씨가 최근 펴낸 시집 『요놈! 요놈! 요 이쁜 놈!』(답게간)은 시인의 여섯 번 째 시집으로 최근작들과 함께 미 발표작 40여 편도 선보이고 있다. 67년7월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6개월간 혹독한 고문을 당했던 천씨는 그 후유증으로 71년 서울시립정신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아무도 몰래 정신병원으로 들어갔기에 문우들은 천씨가 죽은 줄 알고 유고시집으로『새』를 펴내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번에 햇빛을 보게된 미 발표작 40여 편은 가장 감당하기 힘들었던 70년도에 쓰인 시들로 천씨가 누구를 향해서랄 것도 없이 내뱉곤 하는 『이놈, 죄 없는 깨끗한 피는 죽이지 못해. 알겠나』라는 말의 뿌리를 엿볼 수 있게 한다.
『나는 지금 육십 둘인데/맥주를 하루에 두 범만 마신다./아침을 먹고/오전5시에 한 병 마시고/오후 5시에 또 한 병 마신다./이렇게 마시니/맥주가 맥주가 아니라 음료수나 다름이 없다./그래도 마실 때는 썩 마음이 좋고/기분이 상쾌해진다.』 천씨가 술을 주제로 쓴 최근작이다. 취한 몽롱함은 장엄하다며 손벌려 문우들에게 구걸한 돈으로 『할머니 한잔 더 주세요』를 연발하던 말술이 이제 아내가 인사동에 카페를 열어 자력으로 술 마실 수도 있는데 건강상 두병 밖에 허용이 안되니 타고난 천상의 시인이 안타깝기 그지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천씨의 시가 최근에 올수록 초기의 응축된 서정을 잃고 무미건조하게 흐른다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어린이의 순진무구함으로 서정 등 시적 미학을 뛰어넘어 선적인 세계를 열고 있음도 볼 수 있다.
중광이 최근 펴낸 『나는 똥이 올시다』(우리 출판사간)에는 선시 등 시 50여 편과 에세이·평론 등을 싣고있어 시·미술·영화 등에 걸쳐있는 중광의 예술관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한다.『나는 20세기 문화예술의 킬러이다. 수준 높은 문화 예술의 문을 열기 위하여/진실한 사기를 한바탕 쳐야 하겠다』고 그의 시 『가갸거겨 3』에서 밝히고 있듯 중광은 동심 원시상태에서 우러나온 회화 및 행위예술로 「동양의 피카소」라는 화가로, 논리나 미학을 마구 비튼 선적인 시를 쓰는 시인으로, 또 영화 『청송으로 가는 길』주연으로 대종상후보까지 오른 배우로도 잘 알려져 있다.
동심의 순수무구를 통해 막힘없는 광활한 세계로 나가려는 천씨와 중광의 시와 예술이 「광인들의 사기」인지, 막힘없는 큰 예술인지는 두고볼 일이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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