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전』 보여주는 창극으로 탈바꿈-국립창극단 17일까지 국립극장서 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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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아이구 아이구, 아버님 무서운 것을 봤습니다. 신부는 어데 가고 방안에 한 물건이 있사온데 시커멓고 시뻘건 혹이 주렁주렁 달리고 비늘이 잔뜩 돋은 데다 비린내 구린내 썩는 내 푹푹 풍기니, 아버님 저게 대관절 무엇입니까?』
결혼 첫날밤 신방에 들어갔던 신랑 이시백의 놀란 외침에서 알 수 있는 천하의 추녀 박씨부인 이야기를 소재로 한 창극 『박씨전』.
국립창극단은 17일까지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정복근 극본·김효경 연출·김소희 작창으로 『박씨전』을 제75회 정기공연 무대에 올렸다.
끔찍할 정도로 못생긴 주인공 박씨가 남편의 사랑을 얻지 못해 고민하는 소박데기에 그치지 않고 지혜와 용기를 발휘해 청나라 군대를 물리치는 전쟁 승리담을 판소리 중심의 우리 가락과 몸짓으로 꾸민 가무극. 작가미상의 고전 국문소설인 원전에는 박씨부인이 갖가지 신통한 도술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만 이 공연에서는 박씨가 곰배팔이·절뚝발이·앉은뱅 이·곱사등이·소경·문둥이·과부 등 이 세상에서 소외되고 절망한 사람들의 용기와 삶의 의욕을 북돋워 이들이 적과 싸우는데 큰 몫을 하도록 각색했다.
『어서 어서 일어나소. 하늘 원망 신세타령 부질없고 부질없다. 내 설움 내 슬픔도 쌓아두고 곱씹으면 나를 베는 칼 이어니, 그만 털고 일어나서 힘 합쳐…』라는 박씨 부인의 창이나 청나라 군사를 물리치면서 백성들이 부르는 합창 『찌그러진 족박 같다 내버렸던 인생들이 쓸데를 찾아내니…』가 바로 이 같은 작품의도를 드러낸다.
종래의 「들려주는 창극」에서 「보여주는 창극」으로 탈바꿈을 시도한 이 공연은 국립창극단이 처음으로 소극장을 벗어나 대극장 무대에 펼치는 약 2시간 짜리 대작.
주인공 박씨 부인 역은 김영자, 이시백(목시 남편)역은 왕기석, 요염(청나라 공주)역은 안숙선, 장쇠(청나라 장수)역은 강형주씨가 각각 맡고 있다. <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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