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한국촌' 살아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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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 동북쪽에 이 나라와 한국의 우호를 상징하는 학교가 있다. 도심에서 20여 분쯤 떨어진 코리안 빌리지에 자리 잡은 '히브레트 피레' 초등학교다. 이 학교가 한국 정부의 도움을 받아 최신식 학교로 탈바꿈하면서 마을 전체가 살아나고 있다. 이곳이 코리안 빌리지로 불리는 건 한국전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이 모여 살고 있기 때문이다. 종전 뒤 반세기가 흐르면서 한국은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뤘지만 코리안 빌리지는 반대의 길을 걸었다. 주민들이 먹고살 일을 찾지 못하면서 빈민촌으로 전락한 것이다. 당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참전용사들에게 이 지역 땅을 주고 살도록 배려했다. 그러나 할 일이 없어 이들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졌다.

한 현지 교민은 "특히 1974년 쿠데타로 공산정권이 들어선 뒤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박해하면서 코리안 빌리지 주민 숫자는 확 줄었다"고 말했다. 시련이 계속되면서 주민들의 생활 여건은 더욱 나빠졌다. 현재 살고 있는 1000여 가구 중 참전용사와 그 후손들은 100가구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외곽 ‘코리안 빌리지’에 세워진 ‘히브레트 피레’ 초등학교. 교문 오른쪽에 태극기가 보인다. 이 학교는 지난해 4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지원으로 세워졌다.

이런 사연이 알려지자 한국 정부가 나섰다. 참전용사 후손들이 공부하는 히브레트 피레 학교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2004년부터 2년간 8만 달러를 들여 연면적 700여 평에 36개 학급을 수용하는 현대식 3층 건물을 거의 새로 지어주고 컴퓨터와 TV세트, 실험용 자재도 공급해 줬다. 이 덕에 이 학교는 이 나라에서 손꼽히는 최신식 학교로 평가받게 됐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다니는 이 학교의 학생 수는 현재 2500여 명. 교사는 한국인 3명을 포함해 80여 명에 이른다.

물리 교사인 프레우 제리훌(28)은 "교실이 늘면서 학급당 학생 수가 70명에서 40명으로 준 데다 다른 학교엔 없는 컴퓨터와 실험실이 있어 다른 지역의 우수한 학생들까지 몰려오는 명문으로 발돋움했다"고 자랑했다. 그는 "과거엔 마을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이 학교에서 자식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이사 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아디스아바바 남정호 특파원

◆에티오피아의 한국전 참전=16개 참전국 중 하나다. 당시 셀라시에 황제는 근위대 병력을 차출해 보냈다. 6037명의 군인이 세 차례에 걸쳐 파병돼 536명이 부상하고 121명이 사망했다. 처절했던 폭찹힐 전투(1953년)에도 참가했다. 한국전 참전용사회 간부 레테르가조 아베베(79)는 "당시 에티오피아군은 16개 참전국 중 유일하게 포로가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용감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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