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G10으로 <20> '민간 친화' 정부를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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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공무원들은 경제가 힘들 때 정부 씀씀이를 늘리는 걸 미안해했다. 몇 년씩 봉급을 동결하기도 했다. 경제가 좋아져도 나라살림 늘리는 건 늘 송구스러워했다. 공무원 스스로 "작은 정부로 가야 한다"며 세금을 아껴 쓰고 규제도 줄이곤 했다.

요즈음은 그러지 않는다. 경제위기에서 벗어난 지 몇 해나 되었다고 어느새 "나라살림 줄이는 게 능사가 아니다" "정부가 할 일을 제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며 나라살림과 국민 부담 늘리는 걸 무슨 권리 주장하듯 당당해졌다.

나라살림에 대한 생각이 이렇게 바뀌면서 공무원도 늘어왔다. 1997년 11조7000억원이던 공무원 인건비는 지난해 20조4000억원에 이르렀다. 더불어 국민의 정부가 기껏 줄여 놓은 규제도 다시 늘어나고 있다. 그에 따라 규제의 질도 나빠져 세계은행이 2002년 세계 47위로 평가했던 것이 2년 사이에 아홉 계단이나 떨어졌다.

씀씀이와 규제가 늘어서 공무원이 느는 것인지, 공무원이 늘어서 씀씀이와 규제가 느는 것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그러나 분명한 건 씀씀이와 규제로 정부가 커지면 국민 부담도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세금.연금 등 국민 부담은 이제 주택.사교육비.노후와 더불어 4대 민생불안 요인으로 자리 잡았다. 그만큼 작은 정부에 대한 요구가 강하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정부가 할 일이 늘어나서' 정부를 줄일 수 없다고 한다. 아니, 오히려 더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스스로 줄일 수 없다면 국민이 나서서 정부를 줄여줄 수밖에 없다. 국민이 기대하는 정부 일을 줄여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을 보라. 우리처럼 못하고 '잃어버린 10년' 속에서 헤맨다고 비웃던 그 일본을 보라.

고이즈미 정권은 집권 뒤 3년 만에 공무원을 거의 반 토막 냈다. '정부로부터 민간으로'의 개혁을 밀어붙인 덕택이다. 163개의 정부산하 법인 중 136개를 없애거나 민영화하고 또는 독립법인으로 만들었다. 또 27만 명이 일하는 우정공사를 민영화하는 계획도 정권을 물려주기 전에 확정해 놓았다. 그뿐 아니라 '시장화(민영화) 테스트 법'을 만들어 공공서비스를 민관의 경쟁입찰에 부치기로 했다. 국민연금 보험료 징수, 등기 증명서 발급, 통계 조사 같은 공공서비스를 민간으로 내몬 것이다. 우리로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국민에게 직접 호소해 공무원과 국회의 극심한 반대를 이겨낸 고이즈미 개혁은 치솟은 내각지지도로 보답받았다.

고이즈미의 '민간으로' 개혁을 그대로 이어받은 아베 정권은 한걸음 더 나간다. 고이즈미 정권 때 민영화를 피해 갔던 나머지 정부산하 법인도 일본은행 등 5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민영화할 방침이고, 남은 공무원 중 5% 이상을 5년 안에 내보낸다는 생각이다.

공무원을 줄이자. 그러면 일손이 달리게 된 공무원들이 스스로 일을 줄일 것이다. 규제도 줄이고 민간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은 민간에 넘길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국민 부담이 주는 건 덤이다. 규제로 민간 위에 군림하고, 세금으로 민간에 부담을 주는 '큰 정부'를, 규제 풀고 세금 아껴 쓰는 '민간 친화(civilian friendly)' 정부로 공무원 스스로 바꾸게 하자. 그게 G10(10대 강국) 정부다.

김정수 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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