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불가능한 건설정책/민병관 경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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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요즈음 정부가 내놓고 있는 각종 건설관계 시책들을 보면 국민들에게 끝없는 인내를 강요하고 있는 느낌이다.
신도시 부실공사 문제가 터진뒤 보름 이상의 산고끝에 발표된 「7·9대책」은 무주택 서민들에게는 내집 마련의 꿈을 좀더 미뤄달라는 부탁과 다름없고,건설업체들에는 분양연기에 따른 자금난등 여러가지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조치가 목표하고 있는 부실시공방지 문제에 대해서도 아직 전적인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이같은 현상은 7·9대책의 핵심내용 가운데 하나인 건축허가제 강화조치에서 가장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5월이후 일곱번째인 이번 제한조치에는 상업용 건축물의 경우 사실상 거의 대부분이 망라돼있다.
앞으로 지을 수 있는 것은 근린생활시설중 2백평이하의 소규모 건물정도일 뿐이다.
규제대상에 새롭게 추가된 전시·관람집회시설의 건축허가 제한은 문화예술활동의 위축을 초래할 소지도 있다.
규제대상이 1천5백평 이상에서 전체로 확대된 업무시설허가 규제는 앞으로 일정기간 사무실 공급이 완전히 끊기게 됨을 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은 조치의 결정방식이다.
허가제한 조치를 내릴 때마다 3∼6개월씩의 기간을 정해 이 기간동안에만 제한을 하겠다고 했었으나 이같은 약속이 지켜진 것은 지난해 9월의 근린생활시설에 대한 2개월 시한부 재한조치 한번 뿐이었다.
그나마 근린생활시설도 지난 5월 5·3조치때 다시 규제대상에 포함됐다.
나머지는 모두 제한기간이 끝날 무렵이면 어김없이 재연장 조치가 내려졌고 오히려 규제대상이 더 확대되기도 했다.
정부시책을 믿고 건축준비를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예측불가능한 행정이 계속되어 왔다.
건축법은 법적요건만 갖추면 건축허가를 내주게 되어있다. 「자율행정」을 위해 허가권이 중앙정부로부터 시장·군수에게 내려가 있기도 하다.
허가를 제한할 수 있는 경우는 「국방·경제상 특히 필요한 경우」뿐이다.
그러나 이 예외조항은 지난 1년 남짓동안 일곱번이나 발동됐다.
두달에 한번꼴로 「특히 필요한 경우」가 생겼다는 얘기다.
허가제한에 따른 시민들의 불편도 문제지만 허가제한을 「선무당 칼쓰듯」해온 정부의 무신경이 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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