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G10으로 <19> 축복받는 국책사업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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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온갖 '공약성' 아이디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자연환경과 많은 사람의 삶을 뒤흔들지도 모르는 큰 사업들이, 폭넓게 논의된 적도 없는 아이디어들이 뜬금없이 불쑥불쑥 등장하고 있다. 걱정이다. 지난 20년 심각한 사회 혼란과 만만치 않은 낭비와 손실을 안겨주었던 대형 국책사업들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새만금 사업이 걸어온 기구한 길을 돌아보자. 새만금은 1980년대 중반부터 몇 사람이 지역개발사업으로 논의하던 것이었다. 그걸 야당 후보들에게 쫓기던 여당후보가 87년 대선공약으로 등장시켰다. 91년에 첫 삽질을 했으나, 96년 시화호 오염 사건 등으로 환경단체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새로이 환경조사를 하느라 1년 넘게 공사가 중단되었다. 2003년에는 갯벌 살리기 운동이 벌어졌고, 2005년 2월에는 법원이 사업 계획을 바꾸거나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전체 방조제 33km 중 2.7km만 남은 상태에서 중단됐던 새만금은 지난해 3월 대법원이 사업 추진 쪽에 손을 들어주면서 한 달 뒤 물막이 공사를 끝낼 수 있었다. 착공 후 15년이 흐르고, 또 2년6개월의 공사 지연에 75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 후였다.

사업을 벌여놓고 극심한 반대 때문에 추진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새만금 사업뿐이 아니다.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큼직큼직한 사업마다 건건이 그랬다. 경부고속철도.경인운하.동강댐 등 국책사업이 환경단체 등의 반대로 추진이 늦어져 4조원 넘는 경제적 손실이 생겼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2006년 상공회의소 추산).

이들 경험을 통해 수조원의 혈세를 지불하고 나서야 얻은 가르침은 한 가지다. 큰 사업일수록, 다양한 환경과 많은 사람의 삶과 얽혀진 일일수록 미리 사회적 합의를 구하라는 것이다. 나라가 큰 사업을 벌이는 데 기술적.경제적 타당성을 따지는 것은 기본이다. 그 타당성 조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업 추진 여부에 관해 여러 가지 의견을 모으는 일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지훈 수석연구원은 "대규모 개발사업에는 의사결정 과정에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한다. 훗날 탈이 없도록 사업 구상 단계부터 적어도 주민과 환경단체의 의견을 들어둬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17년을 흘러다니다 지지난해에야 건설지가 정해진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은 성공사례다. 선거 공약으로 튀어나온 게 아닐 뿐 아니라, 폭력사태 등 우여곡절이 있었고 착공도 늦어졌지만 나름대로는 주민의 축복과 시민단체의 이해를 구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헛공사를 하거나 돈과 인력이 낭비되지는 않았다.

몇 사람이 모여 앉아 '사람들 귀에 솔깃할 것이 뭔가'를 두고 머리를 짜내는 일은 이제 그만하자. 생계보장과 환경보호 같은 합당한 반대 때문에 사업 추진이 중단될 일은 그만 벌이자. 아무리 귀에 솔깃해도 그런 아이디어는 대선 공약으로 불쑥 내놓지 말자. 우리나라 환경이 146개 나라 중 126위를 할 정도로 저질이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국민의 피 같은 세금을 낭비하지 말자는 게다. 대형사업일수록 시간이 들더라도 모든 걸 깨놓고 원없이 논의해 모든 이의 이해를 구한 뒤 추진하자.

김정수 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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