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기업「죽음의 무기상」 파문/조직적 무기수출 가능성 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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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일 정상회담 앞두고 양국 마찰예상
세계최대의 반도체메이커 일본전자(NEC) 산하기업인 일본 항공전자공업의 미사일 관련부품 부정수출사건이 일본사회에 큰 파문을 던지면서 미일간에 새로운 마찰을 일으킬 조짐이다. 경제대국 일본이 겉으로는 「무기수출 3원칙」을 내세워 제3세계에 무기수출을 금하고 있지만 사실상 「죽음의 무기상」 노릇을 하고 있다는 사실의 일단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일본경찰은 일본 항공전자공업이 미사일부품 뿐 아니라 팬텀4전투기에 사용되는 관성항법 장치부품 자이로스코프의 부정수출도 했다는 새로운 혐의도 5일 밝혀냈다. 따라서 이 회사의 무기부품수출이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구조적으로 행해졌을 가능성도 크다.
또 이 사건적발의 계기가 「이란­콘트라의혹」사건(니카라과 반군지원 자금마련을 위한 미국의 대 이란 무기비밀수출 스캔들)을 수사하고 있는 미 수사당국의 수사협조요청에서 비롯된 사실이 새로 드러남으로써 그 배경에 국제정치의 영향이 크게 작용,사건의 파장은 예상외로 폭을 넓혀갈 것으로 보인다.
일본 경시청 공안부조사에 따르면 이 회사는 88년 전후 2년간에 걸쳐 홍콩상사를 경유,이란으로부터 미국제 공대공미사일 사이드와인더의 비행제어부품인 플라이호일을 수입,자사공장에서 수리한 뒤 통산성에 다른 기기라고 허위로 신고,싱가포르등을 경유해 이란에 수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 회사가 약 1천수백개의 부품을 수출,약 3천수백만엔의 매출액을 올렸다고 밝혔다. 이같은 동사의 미사일부품 부정수출은 85년께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 경찰은 수사결과,복수의 동회사관계자가 부정을 알고 있었다는 혐의를 잡고 있어 이 회사가 조직적으로 「무기수출」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올렸을 가능성이 크다.
이란 콘트라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미국정부는 지난 3월 이 주변국가의 대 이란 무기수출수사에 대해 일본 경찰이 협조해줄 것을 요청,일본 경찰이 수사에 나섬으로써 일본 항공전자공업의 불법무기수출사건이 밝혀지게 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 하이테크(첨단기기)관련 회사의 무기수출이 폭넓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새롭게 드러날 것으로 보여 전쟁관련국에 무기수출을 금지한 일본정부의 「무기수출 3원칙」이 사실상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음이 드러나 일본기업의 무기수출관리가 새로운 미일 마찰의 쟁점이 될 것이 확실하다.
일본 방위기업체가 가입하고 있는 일본 방위장비공업회에 따르면 일본의 기술·생산능력은 극히 높게 평가되고 있어 특히 자국에 사업기반이 없는 이라크·북한 등 제3세계로부터의 기술도입제의가 많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실정이다.
또 일본의 민수용제품·기술이 군사용으로 전용될 가능성도 높으나 사실상 이를 막을 일본정부의 규제책은 없는 것으로 보여 이들 제3세계국가들이 일반기업을 통한 무기부품을 꾀할 전망은 더욱 높아질 것 같다고 관계자들은 얘기하고 있다.
한 예로 지난해 방일한 프랑스 국방장관은 일본과의 방위장비에서의 협력이나 기술교류를 공공연하게 공식회담석상에서 꺼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본 방위청의 한 간부는 이와 관련,『일본에는 모든 무기를 제조할 수 있을 만큼의 기초기술이 갖춰져있다』고 단언한다.
무기수출이 금지되고 있는 군사기술제공도 미국을 제외하고는 할 수 없게돼 있지만 기초기술에 대한 제한은 거의 없는거나 마찬가지라고 이 간부는 얘기한다.
각종 하이테크무기의 제조에 이들 일본의 세라믹스 기술이나 반도체기술이 구사되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걸프전쟁때 크게 활약한 미국의 순항미사일 토마호크에도 일본 전자두뇌가 실려있다. 비행경로를 지시하는 심장부에 미국 자이링크스사의 논리소자가 필수적이지만 이 회로기판을 굽는 작업은 일본 세이코 엡슨사가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세가공에는 일본기술을 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중공업관련 대기업간부는 『군수용기기와 민수용기기간에 명확한 구분은 없다. 군수용전환을 꺼려 수출을 꺼린다면 일본 뿐 아니라 세계경제전체에 큰 후유증을 남길 것』이라고 말해 민수용 하이테크기기의 수출은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한다.
11일의 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터진 이번 사건으로 무기국산화노선을 추진하고 있는 일본 방위산업에도 타격을 미칠 것이라는 관계자들의 얘기다.
일본의 대 북한 무기관련 부품수출사건도 지난 87년 도메이(동명)상사의 전압측정기기 수출로 한차례 드러난 바 있으며 지난해 국교정상화교섭 이후 재일 조총련 관련상사를 통한 첨단전자장비의 수출도 최근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 공산권 무기금수를 규정한 COCOM(대 공산권 수출통제조정위원회)과 맞먹는 실질적인 무기수출 규제책이 나와야한다는 일본내 여론이다.<동경=방인철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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