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정 내팽개치고 총선 준비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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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내각과 청와대 인사들의 대거 징발설이 계속 나온다. 열린우리당은 "내년 총선거 후보로 내세울 현직 장.차관 인사들과 접촉 중"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지난 10일 부산지역 친노(親盧)인사들의 비슷한 건의에 "지금 여러 사안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내년 초까지 좀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장관이나 비서관이라고 해서 총선에 나서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여당의 총선 전략에 맞춰 한꺼번에 무더기로 출마한다니 이들이 정부에 들어온 것은 일하기 위해인가, 이름을 얻은 후 그 이름을 팔려고 하는 것인가. 총선에 마음을 빼앗긴 장관들이 국정을 제대로 챙길 수 있을 것이며, 표를 의식한 선심성 행정으로 흐르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장담하겠는가.

더구나 대선자금 수사를 맡고 있는 강금실 법무장관을 열린우리당 전국구로 영입해 전국을 순회하며 지원유세하도록 한다는 시나리오까지 나오고 있다. 그래서야 대선자금 수사며 대통령 측근비리 수사 등이 총선을 위한 정략으로 흘렀다는 의혹을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는가.

이 정부 들어 지난 9개월 동안 성과를 거둔 것이 무엇인가. 성장동력이 떨어져 적자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파병 문제, 부안 원전수거물관리시설 설치 문제, 자유무역협정 비준 문제, 노동 문제 등 대립과 반목으로 나라만 시끄럽지 제대로 실마리를 풀어가는 구석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러고도 또다시 총선 승리만을 위해 국정을 내팽개친다면 나라꼴이 어떻게 될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 중요 정책들이 표류하는 것도 내년 총선을 의식해 국익상 꼭 필요한데도 일부 국민의 눈치를 살피느라 과감하게 추진하지 못하기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盧대통령은 취임 초 장관들은 가급적 바꾸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그런 盧대통령이 그들을 대거 내보낼 궁리를 한다면 총선 관리용으로 내각을 운영했다는 비판만 들을 것이다. 총선에서 이길 궁리만 하고 국정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아무리 총선 승리가 중요해도 국정부터 챙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