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후배여, 운동장에 빨리 가시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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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힐 것이냐 안 찍힐 것이냐 이것이 문제로다'-. 이것은 최근 어느 기자와 야구 선수 사이에 불거진 불미스러운 사건에 빗대어 한번 만들어 본 대사다. 만들어 놓고 보니 괜찮았다. 신선도에서 원조격인 셰익스피어의 '살 것이냐 죽을 것이냐 이것이 문제로다'를 단연 능가한다. 신선도보다 쓰임새에서 큰 차이가 난다. 우선 셰익스피어의 대사는 그동안 남발이 너무 심했다. 죽고 사는 문제는 아무한테나 닥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툭하면 애꿎은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읊으며 위로를 찾곤 했다.

상대적으로 내가 만들어낸, 사진을 찍힐 것이냐 말 것이냐에 관한 대사는 전적으로 다르다. 무엇보다 셰익스피어의 대사처럼 아무한테나 해당되는 보편타당한 대사가 아니다.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니라 이건 일부 특수층을 위한 선별된 대사다. 예를 들어 얼굴 생김도 시원찮고 히트곡 하나 없는 늙수그레한 가수나 시합 때마다 벤치에 앉아 음료수나 마시는 그저그런 야구선수한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왜냐하면 그런 별 볼일 없는 가수나 야구선수한테는 애당초 문제의 카메라가 따라가 주질 않기 때문이다. 찍겠다는 카메라가 보이지 않는데 거기에다 대고 찍힐 것이냐 말 것이냐 읊조리는 건 헛소리에 불과하다. 요즘은 누가 뭐래도 최첨단 미디어의 시대다. 짧게 말하자면 카메라의 시대다. 매사가 카메라 포커스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자의 전성시대가 아니라 카메라의 전성시대다.

그 카메라가 아무나 따라가 주느냐, 천만의 말씀이다. 따라가기는커녕 그 흉악한 카메라는 어중간한 가수나 운동선수는 교묘하게 선별해 슬금슬금 피해간다. 사진 한방 찍힐 기회조차 주질 않는다. 이게 사람을 환장하게 만든다. 나는 지금까지 이 부분에 초연한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그래서 시중에는 '카메라 의원'이라는 별칭까지 나돌 정도다. 국회의원 중 카메라만 등장하면 잽싸게 얼굴을 내미는 인물을 일컫는 말이다. 나 자신도 카메라가 왔다갔다 하는 살벌한 '체험 삶의 현장'에서 언 30여년간이나 버티어 왔다. 아! 숨차다. 그런 나조차 찍힐 것이냐 찍히는 걸 거부할 것이냐에 관한 대사를 화끈하게 한번 써먹질 못했다. 어설프게 써먹은 경우만 몇번 있었다.

그 옛날 '딜라일라'라는 노래로 믿거나 말거나 돌풍을 일으키며 한국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했을 무렵 남의 집 멀쩡한 처녀를 남이섬으로 몰래 데리고 간 사실이 당시 주간지 기자의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비탄조로 그때 한번 읊었고, 그 다음엔 사생활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나의 부적절한 애정행각들이 무단으로 찍히면서 '아! 아직도 찍히느냐 계속 찍힐 것이냐 이것이 문제로다'를 읊으면서 자못 자포자기 상태로 들어갔다.

돌이켜 보건대 나는 남자답지 못했다. 단 한번 '신분을 밝히세요''사진 찍지 마세요''사생활 침해하지 마세요'하며 당당하게 맞선 적이 없다. 기자의 카메라를 빼앗아 길바닥에 패대기를 친 적은 더더구나 없다. 왜 그렇게 허약했는지 간단하다. 여러 가지 약점이 많아서 그랬다. 무엇보다 가요계에서 불량가수로 퇴출될지도 모른다는 후환이 두려워 당당하게 맞서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찍겠다 못 찍겠다의 시시비비로 법정에까지 서게 된 김병현 선수는 실로 대단했다. 한국 대표 야구선수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추호도 비아냥거리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사내다웠다. 그러나 나는 선배로서 아직 할 말이 남았다.

김병현 선수의 경우는 유명해진 게 죄였다. 유명해지면 해질수록 사생활 침해는 커진다. 그건 철칙이다. 이런 일로 경찰 조사를 받는 모습은 누가 봐도 민망하다. 그러니 유명세 치른다 셈치고 먼저 손 내밀어 악수하고 화해하고 빨리 운동장으로 달려가야 한다. 김선수의 어머니와 팬들을 위해서 말이다.

세상은 야박하다. 언젠가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어? 그 많던 카메라가 다 어딜 갔지?'할 날이 안 온다는 보장도 없다. 애석하게도 없어진 카메라 중에 한 대는 이미 그대의 손으로 없앴다는 사실도 명심해두길.

조영남 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