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모차르트 독일인 만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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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최근 독일에선 모차르트의 국적을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공영 제2방송인 ZDF가 모차르트를 '최고의 독일인물 1백인'중 한명으로 선정하면서다. 오스트리아 사람인 모차르트를 독일인으로 끌어들인 근거는 가히 아전인수에 가깝다.

우선 1756년 그의 출생지인 오스트리아 독립시 잘츠부르크가 당시 신성로마제국 소속이었기 때문에 모차르트는 신성로마제국의 후신인 독일 국민이란 것이다. 모차르트가 25세 때 쓴 편지에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조국 독일…"이라고 한 구절도 근거로 꼽혔다. 그러나 그가 말한 '독일'은 독일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을 의미했을 뿐 당시 존재하지도 않았던 오늘날의 '독일'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었다. 영어를 쓴다고 영국인이 나중에 등장한 미국의 국민이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문제는 이런 무리한 시도엔 민족주의를 부추기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게 아니냐는 점이다. 지난 10월 3일 독일 통일 기념일에 기민련(CDU) 소속 마르틴 호만 의원은 "러시아의 공산혁명을 주도한 유대인들은 범죄자 민족"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히틀러의 죄악에 눌려 독일인이 범죄 민족으로 낙인찍히고 집단 죄의식에 묶여 있는 것은 잘못"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와중에 군 수뇌부인 라인하르트 귄첼 특수부대(KSK) 사령관이 '호만의 발언은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격려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독일 전체가 벌집 쑤신 꼴이 됐다. 호만 의원은 당에서 제명됐고 귄첼 사령관은 군복을 벗었다. 그러나 소동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조짐이다.

시사잡지 슈테른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호만 제명을 둘러싼 의견은 찬반 각각 41%로 팽팽할 만큼 '독일만 잘못이냐'는 태도다.

독일 사회는 1980년대 중반에도 '역사학자 논쟁'으로 비슷한 소동을 겪었다. 쟁점은 유대인에 대한 독일인들의 잔혹행위가 세계사의 유례없는 범죄였느냐는 것이었다.

논쟁은 '나치범죄를 희석시키려는 시도는 잘못'이란 다수의 목소리에 눌렸다. 그런 의미에서 41%로 늘어난 '불만'은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독일 사회는 여전히 과거사의 질곡에서 몸살을 앓고 있다.

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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