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앞 못 보는 30대 美대학 교수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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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보낸 날이 없던 적도 있었습니다. '나만 왜 앞을 보지 못할까'라는 자괴감에 몸을 떤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고교 시절 어느날 '나도 이 세상에 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때부터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됐고 용기와 희망이 샘솟았습니다."

시각 장애인이란 역경을 딛고 미국 아이오와주 노던아이오와주립대 조교수로 발탁된 홍성계(31.대구시 북구 침산동)씨. 21일 출국하는 洪씨는 내년부터 이 대학에서 특수교육 분야를 가르친다. 그는 지난해 8월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충남 공주대에서 연구 교수로 일해왔다.

네살 때 녹내장을 심하게 앓았던 그는 일곱살 때 앞을 전혀 볼 수 없게 됐다.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아버지 덕에 경제적 어려움은 없었지만 학창 시절 내내 장애인이라는 콤플렉스에 시달려야 했다. 고교 때는 기숙사에서 도망쳐 술을 마시고 담배도 피웠다. 인생을 포기할 생각도 많이 했다.

"나 자신은 물론 세상이 미웠습니다. 그러나 학교 기숙사에서 장애인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던 대학생 형들의 도움을 받고는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저 같은 장애인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책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고교 졸업 후 대구대 특수교육과에 진학했다. 그는 '영어를 잘 하고, 원서를 이해할 수 있어야 좋은 특수교육 교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영어공부에 매달렸다. 수업 후에는 대구 시내 사설 영어학원에 다니며 실력을 쌓았다. 또 영어교육학을 부전공으로 선택했다. 그는 같은 학과에 다니던 이유진(30)씨를 만나 결혼했다.

그가 교사에서 교수로 꿈을 바꾼 것은 대학 4학년 때. "교수가 돼 교사를 양성하면 좀더 많은 시각 장애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 않겠냐"는 지도 교수의 조언에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그는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에서 6년 만에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이렇게 (공부)하다 죽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부했습니다."

'안과 해부학'과목이 너무 어려워 아예 점자로 된 책 한권을 통째로 외웠다고 했다. 시험칠 때 외운 교과서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석사 과정 졸업 성적은 평점 4점 만점에 3.98점으로 학과 내에서 1등이었다.

洪씨는 "밥 먹고 잠자는 시간을 빼곤 책만 읽었다"며 "자료를 정리하고 뒷바라지해준 아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그의 최대 관심사는 자신과 같은 학생들을 어떻게 하면 잘 지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는 "열심히 가르치고 공부한 뒤 고국의 강단으로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다.

글=홍권삼,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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